이승철-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개인택시 운전하는 김기사입니다 출석 예전 집사람 운전가르쳐줄때 큰소리 치고 그랬습니다 지금 고3딸 수능끝나고 운전면허따서 연수 시키는데 아무말 못하구 잘한다만 했습니다 어느쪽을 더 사랑할까요?"
개인택시를 오래 하신 분이다. 큰 소리를 칠 만하다. 경력과 실력뿐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다.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다. 운전을 배우는 사람도 이를 안다. 그래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웬만큼 험한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운전면허증은 8년째 신분증으로만 쓰고 있는 나였다. 운전할 일도 없었거니와 '운전은 노동에 대한 왜곡'이라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했다. 발만 까딱하면 금세 어마어마한 속력을 내는 게 노동에 대한 기만이라고 여긴 것이다. 물론 변명이었다. 그냥 무서웠다.
운전을 할 일이 생겼다. '노동에 대한 기만'은 명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열심히 일해서 차사고, 기름 넣고 하는 게 다 노동이 아니면 뭔가. 생각이 짧았다. 운전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는 까다롭고, 질책을 잘하신다. 그런 아버지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을 배우게 됐다. 엄청 긴장을 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타박보다는 칭찬을 하시는 게 아닌가. '운전 천재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나 까다로운 동승자를 만족시켰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란 사람은 다 다르게 보여도 천성은 다 비슷한 것 같다. 결국 자기 자식이 하는 것이라면 다 잘하는 것 같고, 세상을 부정하더라도 자식 편을 들고 싶은 마음.
한창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일 때, 안 좋은 측면에서 아버지와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선배가 있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갑자기 성질을 내고, 썰렁한 농담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해서 신망을 잃는, 그런 타입이었다. 어쩜 그렇게 아버지와 안 좋은 점이 닮았는지. 팀원들의 험담에 오르내릴 때면 왠지 모를 측은함까지 느껴지곤 했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저러면 안 될 텐데'
회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또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지면 틀어질수록, 그 상사와 아버지가 겹쳐 보이는 것을 넘어 완벽하게 일치가 될 지경이었다. 둘 다 별로였다.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공교롭게도 선배의 꼴불견을 통해서였다. '자식 자랑'이다. "00는 고집이 장난 아니야, 아주 자기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된다니까? 저번에는 매장에서 안 가겠다고 드러누웠지 뭐야~" 내용을 들어보면 몹쓸 짓인데, 희한하게 뭐든지 자랑으로 들린다. '거 참 당돌한 아이라니까~' 이런 느낌이랄까. "벌써부터 여자 좋아해 가지고 누나들 보면 애교 부리고 그런다니까~ 허허" '얼씨구'
그런 자리에 있는 건 노동보다 고역이었다. 차라리 일을 더하고 말지. 그날도 역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고민하며 얼굴 경련이 일어났다. 그 무렵 어떤 생각이 스쳤다. '00가 커도 과연 그럴까. 그리고 00은 아버지가 이렇게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해주고 추종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까.' 선배의 성격이면 나중에 아들과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마치 아버지와 나처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겸연쩍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썰렁한 농담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해서 신망을 잃고, 또 공감 안 가는 자식 자랑으로 부하 직원을 곤란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닮은 선배에게 고스란히 그 업보를 대갚음당하고 있는 것일 테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린 나를 안아 올리고 활짝 웃는 아버지의 사진이 눈에 띈다. 회사에서 내 얘기를 하며 혼자 즐거웠을 아버지의 꼴불견이 눈에 선하다.
경력이 상당한 택시 기사님. 따님을 연수시켜주면서 왠지 이랬을 것 같다. "아니 도로가 왜 이 모양이야!" "왜 여기 방지턱을 이렇게 해놨어!" 자식을 중심으로 무거운 세상을 움직이려 하는 무모함. 사랑의 크고 적음보다 애초에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무모함에 가까운 게 아닐까.
-베테랑 기사님의 편파판정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