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근-내 나이가 어때서
예순 넘은 나이에 중학교 입학해서 ~ 현재 고3학년 2월 15일 졸업합니다. 배움이 고파서 시작한공부 결코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수시1차에 꿈에도 그리던 인서울대학 합격통지서 받었습니다. 20대 젊은친구들과 함께하는 대학생활 잘할수있게 응원부탁 드립니다. 신청곡 : 오승근씨의 내 나이가 어때서 부탁드립니다.
'배움이 고프다'라는 말은 생경하다. 배가 고픈 건 하루에도 몇 번씩 생생하게 느껴도 배움이 고프다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가고 싶지 않은 학원에 가며 어렸을 때부터 배움에 갈증을 느끼는 법을 잊어버린 건가. 항상 물어볼 누군가 곁에 있었고, 뭔가를 알고 싶어 애태운 기억이 거의 없다. 모르는 것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자발적으로 택한 무지(無知)였다.
공부나 삶의 조언을 줄 사람은 항상 곁에 널려있었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과외 선생님, 어른들이었다. 하지만 귀찮았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뭔가를 알아야 할 동기가 없었다. 배움에 있어 넉넉한 환경이 오히려 배를 부르게 했다. 배가 부르면 식욕이 없듯 '학습욕'이 돌지 않았다. 배움이란 어떤 취미 혹은 놀이거리일지언정 그 자체로 절실한 것은 되지 못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 저하는 현상 유지도 못 됐다. 퇴화였다. 앎의 양적, 질적인 측면을 떠나 더 근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배움의 갈증을 못 느끼는 것은 곧 배울 필요에 대한 불감증으로 이어진다.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것만을 지키고 변명하는 행동으로 반복된다. '꼰대화' 과정이다.
얼마 전, 엄마와 언쟁이 있었다. 내가 만드는 코너 관련해서 엄마와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내 생각과 달랐다. 정답이 이 있는 문제도 아니고, 충분히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웬일인지 날을 세워 말을 뱉었다. "엄마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러셔. 애초에 초기 기획의도도 그렇고 이번 아이템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만든 건데,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확고한 답이 있으면 나는 왜 말을 꺼냈나 싶다. 단지 내 생각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었겠지. 가끔 가까운 과거의 나조차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참 어이가 없다. 그냥 받아들이기가 귀찮았던 것 같다. 남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의식적, 무의식적 생각으로 뒤섞인 자신의 공고한 철학을 뛰어넘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는 것. 배움의 기본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학창 시절 수학이나 외국어를 좋아하기도 하고, 다른 과목보다는 곧잘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과목은 비움이 그렇게 크게 필요 없는 부분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애초에 비워져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회의나, 철학, 종교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새롭게 배우기가 힘들다. 비우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고집이 있다"부터 좋은 말로는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하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움의 자세가 안 돼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문자를 보고 놀란 건 단순히 이분의 연세나, 확고한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배워나간다는 것은 자신을 비울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럴 수 있다는 것에 경외심이 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서 보고 듣는 것이 자연스레 많아지고 동시에 젊었을 적 유연했던 자신은 없어지고 경직되고 굳어버린 나를 발견하게 된다. 배움에 목말라하지 않는 건, 자신을 비워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배움의 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 비워내는 것. '배움 불감증'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아닐까.
-참(眞)학생의 말씀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