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다

산울림-회상

by Anand

"딸이 없는 제게 딸 같은 아들이 주방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라디오 세팅해주고 가네요~오늘 하루도 힘이 나는 행복한 추억의 한 장면을 채색하고 있어요~"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예체능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만큼의 재능이나 노력은 없어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하는 대로 생활했다. 그래서 여전히 아티스트처럼 살지 못한 채 이 모양 이 꼴이리라.


아무리 예체능을 좋아했지만, 미술은 끔찍이도 따분해했다. 언젠가 엄마가 집 앞 미술 학원에 나를 보냈다. 아마 수행평가 점수 관리 차원에서 인 것 같았다. 나 역시 순순히 다녔다. 처음 몇 달, 아니 몇 주는 재밌었다. 진심으로. "자 오늘은 이 바위를 완성해보자~" 매일 같이 똑같은 바위를 그리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받기 전까진 말이다.


매일 높은 산 위에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 혹은 독수리에게 쉬지 않고 간을 뜯기는 프로메테우스처럼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신화에서 고통을 주는 이가 제우스였다면, 내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학원 선생님이었다. 매일 같은 말로 영겁의 고통을 줬다. '바위를 어떻게 더 잘 그리라는 거야'


아무리 다시 덧칠하고 그려도 내 눈에는 똑같은 바위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손을 거치고 나면 조금이지만 분명히 달라 보였다. 좀 더 입체적이 되거나 주변과 어우러졌다. 하지만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결국 얼마 후 학원을 그만뒀다.


문자를 보고 문득 그때가 생각난 건 그림에 미련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린'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가 생각 나서다.


다른 사람들보다 무언가를 추억하고, 회상하고 그리는 것에 약하다. 그것이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때문에 나름대로 그런 태도에 자신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동시에 오랜 시간 앉아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한 캔버스가 내 앞에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랬었나?, 내가?"이러기 바빴다. 나와 같은 관계, 상황에 놓여있는 상대는 아름다운 추억을 그렸는데, 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던 것이다. 뭔가에 떠밀려 보일 듯 말 듯, 흐릿한 밑그림만 여기저기 그려놓은 채로.


추억을 눌러 담는 건 꽤나 인내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순간순간의 풍경, 정서를 짚어내 부지런히 머리와 마음을 놀려야 한다. 그것이 나중에 아픔이 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런 상처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추억을 눌러 담는 것. 언제쯤 삶이란 도화지에 거침없이 또 묵묵히 그려갈 수 있을까.


-일상에서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청취자의 말씀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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