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을 느끼다

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by Anand

"저도 방송듣고 k라떼 꺼내 타서 마시고 있어요ㅋㅋ설탕타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네살먹은 딸램에게 검은콩가루에 꿀과 우유타서 줬더니 엄마 최고라네요ㅎㅎ"



아이들은 후한 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웃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안다. 콩가루 탄 우유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 맛난 것을 안겨준 엄마는 최고로 보이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생기면 누구보다 기분이 좋았다. 그 행복감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를 테면 한 조각씩 천천히 먹는 귤처럼


어렸을 땐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았다. 대신 원하는 걸 하거나 갖게 되면, 기대했던 만큼의 행복감이 뒤 따랐다. 그 행복의 잔향은 얼마간 남아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줬다.


겨울이면 귤을 꼭 한 조각씩 먹었다. 얇은 막 같은 껍질을 최대한 들 먹으면서 귤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분명한 건 그렇게 먹는 게 훨씬 맛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에 두세 조각씩, 혹은 귤 한 개를 입에 넣어 먹는 어른들을 보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저렇게 맛없게 먹을까'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변해도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사는 건 비슷하다. 여름이면 수박을 먹고, 겨울이면 귤을 까먹는다. 먹는 태도가 달라졌을 뿐.


귤을 까는 시간은 비슷한데, 먹는 시간에 확연히 달라졌다. 귤을 까서 이제 먹겠다 싶으면 없다. '내가 깐 귤은 어디로 간 걸까' 어쩌다 보니 나 역시 귤 한 개를 한꺼번에 털어 넣는 방법으로 먹게 됐다. 제대로 맛을 음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다른 일을 하거나, 혹은 딴생각을 하면서 기계적으로 오물거리기 일쑤다.


어렸을 적 원하는 게 많지만, 갖기는 힘들었다. 한 번은 원하는 장난감을 갖게 된 적이 있었다. 정말이지 '닳다'라는 말이 절로 설명될 정도로 가지고 놀았다. 귤을 한 조각씩 음미하는 태도로.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원하는 걸 한다고 하면, 아니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것조차 힘들다. 돈이 있으면 단편적으로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가지는 게 원하는 게 되는 건가? 그럼 끝이 없는데...'


귤을 한 조각씩 열 번을 먹는 것과 한 번에 한 개씩 열개를 먹는 것. 입안에 남는 잔향, 맛을 느끼는 정도는 비슷하다. 오히려 귤을 열개 까려면 까는 수고가 더 드는 셈이다. 쉴틈 없이 까고 먹고 까고 먹고... 그보다는 한 조각씩 먹으면서 맛을 온전히 느끼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훨씬 '이득'이지 않겠는가.


어릴 적에는 학원에서 미리 예습까지 해가면서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아는 게 많아진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원래 갖고 있던 것, 알고 있던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귤을 '한 조각씩 음미하며 먹는 법' 같은.


-검은 콩가루를 탄 우유에서 '최고'의 가치를 이끌어낸 따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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