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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May 31. 2020

#12. 망망대해에서 책을 쓰다.

주식은 배신해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더라...

 승선 생활을 하면서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영어라는 녀석은 점점 내 친구가 되어갔다. 3년이 지나자 외국인과 거리낌없이 대화하고 타임(TIME)잡지를 구독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내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데, 바로 책이다. 지금까지 책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독가나 책벌레도 아니었다. 그냥 필요하면 읽거나 추천받아 한 두 권씩 읽는 정도였다. 


 대기업은 복지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는데, 이중 많은 부분을 직원의 자기계발 특히, 독서 증진에 힘쓴다. 내가 승선하여 일하던 선박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이라 해봤자 테이블 몇개에 큰 책장 두 개가 정도가 있는 공간이다. 도서 목록을 제출하면 대리점에서 책을 구매하여 국제 탁송한다. 나는 늘 많은 책을 신청했다. 따라서 외국 항구에 도착할 때마다 큰 박스 한 개 전체에 새 책들이 얌전히 담겨 올라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카터칼을 오른손에 살포시 쥐고 테이핑이 되어있는 박스의 홈 부분을 긁어 박스 날개를 펼침으로써 숨죽여 있던 책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선사하곤 했다. 그 날은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쌓아놓고 읽었다. 선박에 나 말고는 딱히 경쟁자가 없었기에 첫 개시는 늘 내 몫이었다. 


 선박은 외로움의 공간이다. 정말 외롭다. 카톡도 안되고 전화도 안 되고 인터넷도 안 된다. 위성 메일과 긴급한 전화를 위한 위성 전화만 존재한다. 친구와 한 잔 기울이는 퇴근 후 맥주가 정말 그리웠다. 어느날은 극도로 뻗쳐오는 외로움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악조건의 환경 탓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승선 생활의 장점에 집중했다. 뭐가 있을까? 이 극히 독립적인 험악한 철재 구조물 안에서의 장점이란? 

 

 육상 근무를 하다보면 출퇴근 시간으로만 하루에 2시간~ 3시간까지도 잡아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옷을 고르고, 외모를 꾸미는 시간까지 더하면 3시간 이상은 후딱이다. 약속은 또 얼마나 많은가? 현대 사회는 약속의 시대다. 퇴근하고 한 잔 마시는 맥주의 시원함을 잊지 못해 한 잔, 상사의 권유로 한 잔, 이쁜 카페를 발견한 친구의 독촉에 못이겨 한 잔, 영화관에서 최신 영화를 시청하며 에이드를 한 잔 해야 직장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하지만 망망대해을 떠도는 선박에서 그럴 사치를 부릴 수는 없다. 보통은 CD게임을 하거나, 다운 받은 영화나 드라마 시청, 모여서 술을 한 잔 하거나 자기계발을 한다. 출퇴근 시간은 약 1분 정도 걸렸다. 조금 늦게 일어나 지각을 하는 날에는 10초 컷도 가능 했다. 6개월 간 늘 같은 사람들과 일하는 배에서 외모를 치장할 필요도 없었다. 머리를 감고 수염을 깎고 늘 입던 제복이나 단정한 옷을 골라 입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저축되는 시간을 영어공부와 독서에 쏟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선내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버리자는 조금은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하루에 3권을 읽은 적도 있었다. 누군가 꽂아놓은 책을 읽다보니 장르를 따지면서 읽을 수는 없었다. 덕분에 평소에 관심 없는 분야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약 30권을 읽고 나면 인생이 한 단계 상승하는 기분이 든다. 혹시나 해서 60권을 읽었을 때를 상기해 봐도 역시나 한 단계 성숙해진 나를 만날 수 있었다. 90권, 120권째도 마찬가지다. 내 나름대로 "책 30권 당 1 계단 법칙" 이라고 명명했다. 혹시 의심이 가는 분은 한 번 해보길 바란다. 단, 30권을 빠르게 읽어야한다. 1년 안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10년 안에 30 권을 읽은다 한들 아무 감흥도 느낄 수 없을 테니... 


  그러던 중 문득 멋진 아이디어 하나가 스쳐갔다. 책을 약 100권 이상 빠르게 읽어 나가는 3번 째에서 4번 째 계단 사이 쯤이었다. 선박에 있으면 사색을 많이하게 된다. 나는 특히 성공과 행복에 관심이 많았다. 부자가 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성공하기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읽었던 스테디셀러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책 (제목: 머니백)은 이렇다. 돈이 적으면 부자, 많으면 거지인 세상에서 모든 사람은 무거운 돈 가방(머니백)을 메고 살아간다. 은행원인 주인공은 성공에 목마른 청년이다. 그는 늘 무거운 삶에 짓눌려 무릎,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 회사원 생활로는 더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자 퇴사 후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 실패 후 밑바닥까지 떨어진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돈의 개념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 소설에서는 돈이 많으면 부자, 적으면 빈민이다. 소설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가볍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머니백 따위는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설 속(=현재 우리 사회)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


 승선 생활 중에 취미로 쓰던 단편 소설은 어느새 살이 불어 300 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 되었고, 수 십번의 퇴고를 거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출간의 문 앞에 도달했다. 모든 게 꾸준함의 결과였다. 지금도 망망대해에서 처음 펜을 들어서 썼던 문장을 읽어보면 너무나 부족한 내 글솜씨에 놀란다. 어떻게 이렇게 못쓸 수 있을까? 자책도 해본다. 물론 지금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꾸준함에 답이 있다. 토익 600점을 맞아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했던 대학생은 매일 몇 시간씩 영어공부를 빼먹지 않았고 3년 만에 타임(TIME) 잡지를 읽고 외국인과 부담없이 사견을 나누게 되었다. 필요할 때 흥미로운 책만 조금씩 골라 읽던 신입 사원은 3년 동안 수 백권의 책을 읽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출간을 통해 작가로의 데뷔까지 꿈꾸고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모든 기업은 개인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철밥통이라고 불리우는 공무원도 영원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한다. 사회는 빠르게 변모하고 있고,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회사를 퇴사해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자기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혹시나 창업이나 회사 밖의 로망을 꿈꾸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잠시 스타트업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회사 밖은 정말 생지옥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발을 들여도 괜찮을 정도로 사회는 친절하지 않다. 인내심도 없다. 될 놈만 데려간다. 때문에 당신에게 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꾸준함을 무기로 천천히 묵묵하게 걸어가야 한다. 30년 간의 짧은 인생을 비추어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데, 주식은 배신해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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