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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Feb 07. 2021

#13. 항해사의 스타트업 도전기

 세계적인 경제학부 교수도 주식 투자에는 젬병이다

 항해사는 외롭고 힘든 업이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을 상쇄시켜주는 게 있었으니 바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사회생활을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저축도 많이 할 수 있는데, 선종이나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초봉이 4,000만 원 이상 된다. 평균적으로 군대 의무 승선 기간 3년을 타면 1억 원 정도를 모을 수 있다. 


 군대 안 가고 20대 초 중반에 1억 원을 모을 수 있다는 말에 꿀 향에 취해 "나도 배나 탈걸!"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선박 생활을 하면서 크레인 오작동으로 목숨을 읽을 뻔한 경험 1번, 고압 분사 노즐 점검 중 실명 위기 1번, 소말리아 해역 부근에서 해적을 만나 도망친 경험 1번,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에볼라에 걸릴뻔한 적 1번, 20미터 아래로 추락할 뻔한 경험 1번 등 선박 생활은 절대 바다위 아틀란티스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보통 1억 원을 모을 수 있다는 얘기가 모두가 1억 원의 종잣돈을 쥐어 나갈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젊은 나이에 나름 큰돈을 받으면 씀씀이가 커지는 게 사람 마음이고, 억누르지 못하면 구멍 뚫린 장독대처럼 줄줄 새 버린다. 아무리 착한 콩쥐가 와도 절대 물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승선 중간중간 휴가를 받는데(보통 6개월 배를 타면 2개월 휴가를 받는다.) 풀빌라에 클럽에 해외여행에 명품에 돈을 물 쓰듯이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3년 7개월의 고행을 끝으로 자유라는 사리가 하나 생겼을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인사고과가 훌륭하다며 몇 년만 더 배를 타고 육상팀으로 올 것을 제안했다. 몇 년간 더 배를 타는 기간도 연봉 7천만 원 정도를 제안받았으니, 누구나 솔깃할 만했으나 나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배 생활을 청산했다. 그때 나는 젊음이라는 묘약에 취해 매우 호기로웠고, 도적적이었다. 내 가치를 1,000억 원 이상으로 책정했고, 연봉 7천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시에 새로운 도전이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스타트 업(Start up)이다. 그 당시 재화를 거래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많았다. 미국에는 아마존, 중국에는 알리바바, 한국에는 쿠팡 등 온라인 기반 쇼핑몰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서비스를 거래하는 플랫폼은 걸음마 단계였다. 사실 재화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게 인간의 네트워크 노동, 겸험을 바탕으로한 인적 서비스다. 


 때문에 나는 '줄 대신 서주기, 벌레 잡아주기, 가구 옮겨주기' 등 간단한 육체노동부터 '전문 번역, 1대 1 과외, 전문가의 보고서 검수' 등 지적 도움까지 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먼저 같이 일할 직원, 팀원을 구하기 위해 카페 등 다양한 공간에서 사람을 모집했다. 지인 중에 마음 맞는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IT에 대해 기술적인 지식도 없었기에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다. 부랴부랴 IT 관련 서적을 구매하고 코딩 공부도 시작했다.


 스타트 업 시작단계는 정말 고단했다. 모두가 반대했다. 가족, 지인, 친구 등 모두가 진심으로 걱정했다. 내가 책을 쓰고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지만, 힘들고 위험할 것 같다 싶으면 내 주변, 사회, 세상은 늘 경고한다. IT 전공도 아닌 내가 애플리케이션 IT 스타트 업을 시작, 운영하는 건 나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고, 세계적인 경제학과 교수님도 주식 투자에는 젬병인 경우가 많지 않던가? 세상에는 절대 특정 전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사업 따위란 없고, 아무리 뛰어난 전공자도 회사를 운영하고 키워나가는 것은 전공과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만약 나에게 가슴 뛰는 비전과 꿈이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열정의 불씨가 남아 있다면 전공이 아니라서, 경험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등 화수분처럼 샘솟는 수많은 이유들의 물 한 바가지로 열정의 불씨를 꺼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결과적으로 모두의 반대를 뚫고 나는 스타트 업을 시작했다. 모르는 것은 배워 묻고, 팀원을 믿고 맡겼다. 그렇게 호주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 H카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참여한 IT 개발자, 서버 개발자,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를 나온 대기업 직원, 산업 디자인을 전공 중인 대학생 그리고 이 조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CEO이자 항해사 1명 포함 총 5명이 세상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묶어보겠다는 뜻으로 도원결의하여 좁아터진 냉동 삼겹살 집에 옹기종기 모였다. 제2의 카카오, 페이스북을 만들자는 희망으로 가득 찬 대화는 밤새 계속됐고, 어느새 지글지글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가 눈 앞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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