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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Apr 05. 2020

#1.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학생이었다

축구와 독서를 즐기던 평범한 학생의 이야기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학생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두뇌는 초등학교 이전 시절의 추억을 토막 내버렸고, 토막 난 단편의 조각들은 기억의 뉴런 저편 어딘가에서 굳이 끄집어 올릴 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평범했다. 초등학교 시절은 몇 번의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글짓기 상장 몇 개... 수업을 저렴하게 들어보기 위해 집 근처 학생을 모아 시작한 그룹 스터디. 얻어터지고 들어와서 씩씩 거리며 부모님을 졸라 시작한 태권도 등... 어쨌거나 나는 햄 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딱 그 정도 나이의 어린애였다. 


 모든 것은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듯 자연스러웠다. 형, 누나들이 얘기하던 대학 이야기는 내게는 오지 않을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칭찬 스티커를 모아서 형광펜 세트를 타는 게 내 인생의 낙이 었고 유일한 목표였다. 그리고 이 분야에 꽤 소질이 있었다. 소소하게 글짓기 상도 탔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책상에 앉아 포카칩을 씹어 먹으며 글을 쓰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단지 시를 써보라고 해서, 내 심정을 표현해 보라고 해서 끄적인 무의미한 글들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많은 게 바뀌었다. 특히나 '성적'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았다. 중학교 첫 담임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쳤다. 선생님은 늘 내신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다 못해 그 못들이 혈관 구석구석 스며들 수 있게 새차게 박아댔다. 덕분에 '내신 시험이라는 게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거구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반장, 부반장을 늘 도맡았다. 사실 학생 임원 선거는 지금의 정치와 어느 정도 닮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면 된다. 단지 그들이 필기구를 원할지, 햄버거 세트를 원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경제력이 있으면 둘 다 주면 좋겠지만, 중학생에게도 정의와 양심이라는 피가 흐르고 있다. 그들은 과도한 선거 공약을 못 미더워한다. 선물에 눈이 멀어 투표한다는 일말의 자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리고 나는 늘 신메뉴를 들먹였는데, 이것은 꽤 효과가 좋았다. 누구나 판도라의 상자 안이 궁금할테니! 


 "이번에 롯데리아에서 라이스 버거라고! 쌀알로 만든 버거가 나왔습니다. 제가 당선이 된다면..."



 부모님은 내 성적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분은 알고 계셨다. 중학교부터는 실전이라는 것을. 중학교 성적은 인문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 등 선택의 기로를 결정짓는 첫 관문이다. 물론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서도 크게 대성할 수 있겠지만, 부모님은 일단은 좋은 성적을 받아 인문계를 갔으면 하는 마음이 크셨다. 흔히 하는 '추울 때 추운 곳에서,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지 않으려면 펜대를 굴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 들어 귀족 노조의 행태를 지켜볼 때면, 펜대를 굴리다 정년도 못되어 잘려나가는 현실이 맞는가 싶지만, 어쨌거나 그 당시에 나의 인문계 진학은 우리 가족 모두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중간만 가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보다는 점심 먹고 즐기는 축구 쪽으로 관심의 축이 돌아가있었다. 나는 축구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그저그랬다. 내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는데, 사실 중학생 축구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두가 미드필더다. 수비를 하다가 맘 내키면 공격도 하고, 공격하다가 체력이 되면 수비도 하고 그런 게 우리들의 축구 방식이다. 덕분에 체력은 더 빨리 소모되었고 온갖 빈 공간을 만들어 내는 여백의 미를 창조해냈다. 감독 따위는 필요 없는, 이겨도 아이스크림 하나 떨어지지 않는, 순수하게 이득없이 즐기는 경기이다. 즉,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즐기는 땀의 향연이었다. 


 부모님은 내 관심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내 방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다. 나는 심심할 때면 국내 동화, 세계 동화, 과학 관련 만화 등 을 읽었다. 책을 좀 보는구나? 싶었는지 심지어 고등학교 올라갈 때 세계 고전 명작 100권을 꽂아 두셨다. 이 책들은 아직 까지 내 방에 꽂혀있는데 나는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읽을 책이 없다 보니 이해도 못하면서 '염상섭의 삼대', '루쉰의 아큐정전', 셰익스 피어의 '햄릿' 등 을 읽었다. 부모님은 논술 준비용이라고 했다... 재미없는 책들 중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다. 이 책만큼은 술술 읽었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이 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고 많이 놀랐다. 문장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군더더기를 빼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늘어나는 군살만큼 빼기 참 버겁다.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던 중에 처음으로 뉴스에서만 보던, 형들이 말하던 학업 스트레스가 목덜미를 잡았다. 바로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다. 집에서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번 첫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5등을 하면 내가 원하는 게임용 의자와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결국 나는 자본주의의 힘에 굴복하여 편안하고 안락한 게임 환경 조성을 위해 공부란 놈을 쫒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공부를 시키기 위해 공부에 가장 적이 되는 게임을 불러온 건 잘못된 방향으로 튀어버리는 탱탱볼 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리스크 덩어리다.

 그만큼 절실하셨던 걸까? 마치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파우스트'라는 작품도 어쩔 수 없이 꽂힌 논술 100권 모음집 중에 그나마 가장 쉬워 보여서 꺼내 읽었던 책이다.) 물론 부모님은 반에서 5등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공약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공약 이란 늘 현재 상황보다 높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으니까. 

 나는 달콤한 과즙을 맛보기 위해 첫 중간고사에 매진했고, 성적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성적은 내 인생을 바꿔버렸다. 나침반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와 같은 뜨거운 설렘이 가슴 전체를 덥혔다. 어디로 튈지 모르던 내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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