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The fall) : 디렉터스 컷'

by 훌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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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20년대 로스앤젤레스 병원에서부터 시작한다

로이는 스턴트맨으로 영화 촬영 중 낙상하여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알렉산드리아는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 왼 팔에 깁스를 했다



존재 이유를 잃어버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로이(리 페이스)는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침대 아래에는 걸을 수 없는 그를 위한 변기가 놓여 있고

여자친구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연인이 아니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보상에 합의하라며 재촉하는 영화 관계자들뿐이다.



무료한 일상 중 어느 날 쪽지 한 장이 날라와 그의 침대 위로 떨어지고 그 종이를 따라

햇살 같은 알렉산드리아(카틴 카 언타루)가 병실로 쑥 들어선다

병원 생활이 심심하기는 알렉산드리아도 마찬가지

자전거 뒤에 실린 커다란 얼음에 혀를 대어 날름거리는 아이에게

배달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배탈 난다 혀 대지 마라"라고 한다

간호사는 잠 못 드는 5살 아이를 엄마처럼 품어 토닥토닥 잠들게 한다



자신의 편지를 아저씨가 가져갔으니

대신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로이는 아이를 위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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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아이가 이야기에 빠질 때쯤 모르핀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잠시 아이는 아저씨를 위해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계속 듣기 위해 약을 가져다준다




로이는 무법자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독재자 총독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어내기 시작하고

알렉산드리아는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 무법자는 왜 죽어야 하나, 죽이지 말라 간섭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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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로 불린 이들은 실상 무법자가 아니다

자신의 옆에서 같이 노예로 일하던 동생이 덜컥 죽어버리자

복수를 다짐하며 활을 들었고

총독에게 아내를 뺏긴 후 더 이상 내게 여자는 없다고 선언한 순정남



원숭이 웰리스를 데리고 다니는 생물학자 다윈

다윈 생존 당시 일부 보수 언론은 그를 원숭이에 빗대는 풍자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웰리스'는 다윈의 연구에 큰 도움을 준 학자 이름이기도 하다



고목에서 튀어나온 주술사 등

그들은 모두 복수의 대상 독재자 총독을 향한 날선 마음을 벼리고 있다




이야기꾼 로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왕복한다

감독은 로이의 입으로 재현되는 이야기 씬에서 그동안 상업 감독으로서 쌓아 올린 역량을 아낌없이 펼친다

이 영화의 두 축은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등장하는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스토리텔링이 한 축을 담당하고

또 한 축은 이야기 속 무법자들을 따라 움직이는 앵글에 포착된 찬란한 장면들이다.


이 장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작품이다 (그야말로 미쳤다)


전 세계에서 골라 뽑은 아름다운 풍광에 얹힌 배우들의 의상과 구도의 배치, 색감은 조화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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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만 따로 사진으로 뽑아 전시한다면 흔쾌히 찾아가고 싶을 만큼 볼 거리가 차고 넘쳐 오롯이 마음을 뺏겼다.



24개국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고

CG가 1도 없고

총 제작 기간이 28년이라니 감독의 끈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나라에서 뒤늦게나마 그 빛을 발하여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다니 다행스럽다




타셈 싱 감독은 이 작품에서 '구원'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아빠가 없는 알렉산드리아는 건강한 모습으로 오렌지 과수원으로 돌아가

오렌지 껍질 속에 틀니를 넣으며 오렌지가 열리기를 기도한다

영화 말미에 알렉산드리아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삶의 의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은 로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약장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크게 다친다



위악을 부리던 로이는

마침내 휠체어에 앉아 병원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기에 이른다

더 이상 스턴트맨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 그 영화를 바라보는 로이

옆에는 깁스를 한 알렉산드리아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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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해 아낌없이 나를 내어줄 수 있는가

영화를 함께 본 딸이 물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가 없는 선의가 존재하는가'



그래서 타셈 싱 감독은 말하고 싶었나 보다

구원은 가능하다고

진심을 다하면 가 닿아서 구원할 수 있다고.

그 과정이 지극히 험난하여 굳이 대가도 없는 이 일을 내가 왜 하고 있지 생각할 수 있다



회의에 빠지는 건 차라리 인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기에 가치롭다



타인을 구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추락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정도가 차이가 있겠지만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하며 의욕을 상실하지만

인간이기에 한 계단 한 계단 다시 내딛는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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