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차 캥거루 양육기

by 훌훌

9. 변종 캥거루


어제 저녁상에서 대만을 같이 다녀온 캥거루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직을 고민하고 있고

부모는 별거 중인데 같이 사는 나이를 먹어가는 엄마는 건강체크가 필요하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데

집 생활비 일부를 부담하다보니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단다


세상에 나올 때 자식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선택없이 주어지는 로또다

긁어봐야 안다

당첨되는 복권인지 말짱 꽝으로 오히려 자식에게 손 내미는 부모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지는 인연에는 그 어떤 원칙과 규칙도 존재치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뿐이다


10년이 지나 이제야 털어놓는 친구의 가정환경을 접하고 우리 집 캥거루는 생각이 많아지나 보다

자기는 부모님이 아프면 잘 케어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아빠가 하는 말

"자네 앞가림이나 하세요"


그 이유인즉슨 전날 오전에

생리통에 시달린 캥거루가 침대에 누운 채로 아빠에게 따뜻한 물과 핫팩을 부탁하는 톡을 보냈나 보다

잠시 후 하명하신(?) 물건을 갖다 주면서 아프다는 종아리까지 만져주는데

때마침 핸드폰 울리는 소리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거실로 나가서는

함흥차사......

이후 캥거루는 애타게 "아빠" "아빠" 불렀지만

남편은 못 들은 척 통화를 길게 했더라는 얘기.


위의 사연은 우리가 익히 아는 캥거루 본연의 모습에 딱 맞는 시추에이션


서른 넘어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캥거루의 친구는

같은 집에는 살고 있지만 오히려 부모를 케어하며 청춘을 삵히고 있는 중.

경험은 삶의 굳은살이 되고 세상사에 부딪힐 때 갑옷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말랑말랑한 속살 그대로 구가하고 싶은

불타는 청춘의 가녀린 발목을 붙잡는 답답한 현실.

부모인들 그러고 싶겠냐만은

안쓰럽다.


인생은 그렇게 그대를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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