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고 한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초가을 저녁 식탁에서 불쑥 날아온 것 같다. 내년 가을에 결혼하고 싶다고
이렇게 훅 들어오는 거구나, 인생사 처음 가는 길 투성이니 모르는 게 태반이다. 이 시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내 엄마. 엄마도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닥쳐봐야 아는 포인트가 가야 할 길 곳곳에 숨어 있다. 내년 3월 초 전세 만기라서 갱신하겠거니 했는데 남자 친구도 내년 2월 전세 만기이고 자취 생활하는 두 사람은 만 5년을 채우고 결혼식장에 들어서게 된다. 결혼한다면 현 남자 친구와 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얘기를 하고, 회사에도 남자 친구 있다고 공언하며 팀장 친구 아들 소개팅도 거절했었다. 막내 결혼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좀 막막하고 섭섭하다. 대학 1학년 마치고는 기숙사에 나가 있거나 취직 후 회사 근처에 살다보니 품 안에 있던 기간이 짧아졌다. 저녁식사 후 남편과 산책을 하며 그날이 온 거야 자식은 그렇게 떠나는 거라며 서로를 위로했었다
둘째는 우리 부부가 기다리는데도 찾아와 주지 않았다. 1994년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내 몸은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유없이 치통이 찾아왔고 자궁에 탈이 나서 불쑥 불쑥 하혈을 하며 몸이 축났다. 근처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를 방문하고 나서야 간신히 둘째를 만나게 되었다. 둘째가 내 몸에 들어오자 위장은 더 메슥거리며 반갑다는 인사를 했고 첫 애 때와는 여러가지 느낌이 다르길래 아들인 줄 알았다. 1997년 3월 아이를 낳고 삼성병원 입원실에 누웠는데 친정엄마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둘째는 아들이면 더 좋았을 텐데" 시어머니는 딸이 더 좋다 하며 아쉬워하는 울 엄마를 위로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어른이 서운하다 할까 봐 먼저 설레발을 치셨나 싶기도 하다.
아기는 내 뱃속에서 편안하지 못했는지 위장이 약했다. 큰 애가 먹은 대로 소화를 잘 시키고 변 상태도 좋은 반면 둘째는 장염에 자주 걸려 설사를 하고 그래서 자주 면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했다. 발갛게 짓무른 아기는 당연히 칭얼거릴 수밖에 없었고 장이 영양소 흡수를 잘 못하니 젖살로 통통했던 기억이 없다. 백일이 지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다지 살집 없는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는 소시지 같은 팔뚝과 말랑말랑 호빵 같은 아기들을 보면 자꾸 눈길이 가곤 했었다. 배냇머리조차도 풍성하지 않아 걱정하는 나에게 옆집 인생 선배는 "걱정을 마라 이런 아기가 더 머리숱 시커멓게 올라온다" 위로해 주었다. 말썽꾸러기 아들만 둘을 둔 그 인생 선배는 가끔 나에게 "둘째는 우리 집에 주면 안되나" 두 손 모으며 애원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었다.
그 아기가 결혼한다고 해서 어제 신혼집 계약하는 현장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