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보호색

by 훌훌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보호색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보호하지 않으면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밟으면 꿈틀 해야 한다고 자주 얘기한다. 1997년생 그녀의 외양은 아주 순한 인상에 생글생글 잘 웃고 과하지 않은 친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본인 의사를 전달한다. 그래서 처음 본 사람은 생글거리며 웃는 선한 얼굴만 보고 만만히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러다 큰코다친다. 호락호락하지 않고 결국에는 본인이 원하는 걸 해내고 얻어내는 캐릭터다. 부모 입장에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 조언, 부탁을 하면 취사선택이 확실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경우가 많아서 때론 내가 속을 끓이기도 한다.


중학교 때까지도 전화 걸기를 두려워하고 자기 목소리를 안 내고는 뒤 편에서 관찰하고 모색하는 성향이었다. 그 후 그녀는 날이 갈수록 회복 탄력성이 생기고 더 부드러워지면서 내연 외연(?) 모두 확장해 나갔다. 남자 친구도 사귀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주변에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지금은 중학교 시절 7 공주, 고등학교 시절 학년별 친구 모임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대학교 가서도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웬만해서는 관계를 단절하지 않아 내년 결혼식에 찾아올 친구 수가 만만치 않다. 회사 팀장이 사주를 봐주면서 한다는 말이 "자네는 웃으며 할 말 다 하는 사람이야"


가끔 회사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할 때 늘 하는 말이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까지 친절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네 마음이 다친다고 말한다. 지난주 회사 선배가 출장일정이 있는데 숙박할 호텔을 예약해 달라고 한 모양이다. 팀에서는 막내인지라 이런 류의 부탁을 종종 들어주었나 보다. 주말 집에 와서 계속 호텔 예약 건을 알아보는데 후기가 그다지 좋지 않은 호텔 예약만 가능해서 톡을 보냈지만 선배는 오랫동안 읽지않고 있었다. 주말 가족과 함께 쉬고 있을 텐데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걸 옆에서 지켜보자니 내가 화가 났다. 그녀는 그냥 남은 호텔로 예약했다. 회사 가서 만나면 가능한 본인 출장 건은 직접 하고 문서 처리 과정에서 모르는 부분은 물어보라고 하겠단다


인사하러 온 남친에게 말했다.


"퇴근길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딸 애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아, 결혼해서도 딸 애 고유의 이런 모습들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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