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게 진실인가?

- '철갑 코뿔소' 이화연 글, 임찬미 그림

by 훌훌

이 책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나,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게 과연 진실인가

그래서 철학자 김상봉이 이 책에 이름을 얹어 말한다.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많은 물음은, 대답할 수 없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알고 있는 이면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국면이 있는 거 아닌가 뒤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질문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광기에 휩싸여 서로 자기만 맞다고 우기는 피로한 사회,

자기를 들여다보는 쉼표가 필요한 시대이고 진실을 말할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1515년 5월 포르투갈 사람들은 처음으로 코뿔소를 보았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서 소년 미겔은 아버지

목마 위에서 아주 멀리 있는 코뿔소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유럽 사람 그 누구도 코뿔소를 본 적이 없어서 사람들은 코뿔소의 생김새를 알지 못했고 상상 속의 동물이었다.



코뿔소가 배를 타고 리스본에 도착한 날 어떤 사람은 동물우화집에 실린 유니콘을 닮은 코뿔소를 보게 될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가 유니콘을 얼마나 닮았을까 궁금해했다. 커다란 배에서 내린 코뿔소는 너무 멀리 있었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수많은 인파에 가려져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어느새 소년 미겔은 할아버지가 되어 벽에 걸린 낡은 코뿔소 판화를 손녀 타냐에게 보여주었다.


"할아버지, 코뿔소가 이렇게 생겼어?"

"그럴지도?"

미겔 할아버지도 타냐처럼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포르투갈에 상륙한 코뿔소를 제대로 본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멀리서 형체를 본 사람, 봤지만 기억의 오류가 생긴 사람, 추측이 덧붙여져서 여러 모양의 코뿔소가 회자되었다. 화가 뒤러는 코뿔소를 그려 판화로 제작하였고 이 판화는 여러 장 팔려 나갔다. 자신이 직접 보지 않았지만 본 것 같은 사람들의 얘기가 널리 널리 퍼져 나갔다.


"맞아요, 이마에 유니콘처럼 길고 멋진 뿔이 있었어요"
"그리고 갑옷을 입었더군요"
"나는 목에 고지트가 있는 걸 보았다우"
누군가는 악어의 얼굴이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게 아니라 하마의 얼굴이었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악어를 닮은 유니콘의 얼굴이었다고 말했지요



화가 뒤러는 실제 코뿔소를 본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어 스케치를 하고 판화를 완성했다. 이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널리 퍼져서 실제와는 다른 모습의 코뿔소가 곧 진실인듯 자리 잡았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알았다. 원래 모습과는 다른 코뿔소 장식품이 생겨나고 성당에도 벨렝탑에도 뒤러의 코뿔소만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왕궁동물원 청소부였던 미겔의 할아버지는

"미겔, 사람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법이야. 진실이 무엇인가는 신경 쓰지 않지......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을 거야. 적어도 백 년은 지나야 진실이 밝혀질 테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절대로 자신의 믿음을 고치려 들지 않을 게다."



960px-D%C3%BCrer%27s_Rhinoceros%2C_1515.jpg?20151004012122 위키백과에서 퍼온 뒤러의 '코뿔소'


당시 유럽 사람들은 18세기 중후반까지 위와 같은 모습의 코뿔소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아는 게 진정 맞는 건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삶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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