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 한다면 한다

by 훌훌

그녀는 노는 걸 워낙 좋아한다. 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때론 조금 넘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의견이 중요치 않다는 걸 나도 안다. 다만 그녀의 컨디션이 걱정될 뿐이다. 젊은 날 남편도 많이 놀러 다녔고 나는 반대로 집과 학교가 거의 대부분인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냈다. 지나고 나니 고집불통 엄격 보수주의자 아버지와 통금 해제 대화라도 시도해 볼걸 하는 이젠 쓸모없는 후회만 넘쳐난다. 그래서 한편으론 그녀가 부럽기도 하다.


친구 만나서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남친과 데이트하고 데이식스 공연에는 꼭 간다. 여행도 자주 간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계속될 모양이다.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들끼리 친구 집 아파트 게스트 하우스에 모여 놀기로 한 모양이다. 이른바 '파자마 파티' 놀다가 너무 늦지 않게 귀가하라고 하니 "왜 나만 그래야 해, 다른 애들 부모님은 다 허락했는데......" 화가 나서 안 가는 줄 알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방 문을 열어보니 침대는 비어있고 현관문 걸쇠는 잠겨 있다. 갑자기 머리로 피가 몰리며 심장 박동이 솟구친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7시쯤 되자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무사히 귀가하셨다. 그때 우리 집은 2층이었고 바로 앞에 푹신한 정원이 그녀를 위한 매트리스를 펼치고 있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그녀를 가끔 '새벽탈출' 줄여서 '새탈'이라고 부른다.


친구들은 다 모여서 꿀을 빨며 즐겁고 달달한데 이 모진 엄마는 왜 허락을 안 해서 나를 힘들게 할까

친구들은 계속 그녀를 유혹했겠지

심지어 친구 엄마는 나에게 전화해서 걱정말고 보내도 된다고, 자신이 들여다 본다고도 했었다

겁쟁이인 줄 알았던 그녀는 1997년 이후로 가끔 이렇게 나를 놀래킨다. 그날 이후 늦은 밤 화장실에 가다가 빈 침대를 보면 잠시 또 멈칫한다. 빈침대증후군이다. 그녀들은 컴컴한 거실 바닥이나 소파에 그들의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있건만 새가슴 엄마는 아찔하다 피가 쏠리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인사 차 집에 온 그녀의 남친과 밥 먹는 자리에서 조심스레 '새탈'을 말하려 하니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다 말했단다. 뭐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 그때 걸쇠를 열어놓고 조금만 일찍 들어왔으면 완. 전. 범. 죄."


그러면서 한 쌍의 바퀴벌레는 웃는다

우리 한 쌍만 어이없을 뿐.

'하느님 제발 그녀에게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키우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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