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 결혼하고 싶어요

by 훌훌

97년생 딸과 한 살 더 많은 남친은 둘 다 회사에 다니고 사귄 지 4년이 넘었다. 그들은 둘 다 출근 거리 때문에 회사 가까이 전세를 살고 있는데 2026년 2월, 3월이 전세 만기 시점에 이르니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2024년 취업하고 1년 정도 지났을까 딸은 결혼하고 싶다 했고 무방비 상태였던 나와 남편은 놀라고 또 서운했다.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즐겼으면 하였고 결혼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여 여유있는 스케줄로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굳이 벌써 가겠다고, 이제 슬슬 보낼 준비가 필요하겠구나' 이런 감정이 깔린 체로 말이 오고 가다보니 딸의 마음은 상했고 그 못지않게 놀란 나와 남편은 그날 저녁 산책길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앞으로를 준비하자고 했다.


2025년 늦가을 다시 결혼하겠다 말을 꺼낸 후 준비가 시작되었다. 웨딩박람회를 다녀오고 플래너를 만나고 톡이 왔다. 1,2월까지 이사에 집중하고 3월에 촬영드레스 고르고 4월에 웨딩촬영을 하기로 했다고. 촬영 후 사진 보정작업에 품이 많이 들어서 빨라야 7월 결혼식이 가능하단다. 이런 대장정이 있었구나. 30여 년 전 결혼 문화와는 크게 다르고 자식과 부모라는 입장 차이는 너무나 커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가능한 하지 않으려 애썼다. 주변에 딸 결혼시킨 지인들 공통으로 하는 말 "얘가 이럴 줄 몰랐다" "말다툼 후 얼마간 말을 안 했다" "많이 서운하더라"


양가에 야무진 결혼 과정을 전한 후 2025년 12월 사윗감이 집으로 인사를 하러 왔다. 꽃바구니와 백화점 과일 상자, 한우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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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코스는 양가 상견례. 판교 음식점에 아예 상견례 코스가 개발되어 있었다. 2026년 1월24일. 세팅된 테이블에는 한 쌍의 원앙이 주인공처럼 중앙을 차지하고 스티커로 포장한 술 병 두 개에는 신랑감 신붓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세상 제일 어색한 분위기에서 예단은 생략하자, 신혼집 얘기, 결혼식 날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를 마치려는 찰나, 갑자기 신랑 쪽에서 선물을 내민다. 정관장에서 나온 '녹용 에너지로 기력 회복'하는......그것도 나와 남편 각각 한 상자씩, 또 신랑감 이모가 직접 재배하고 짠 들기름 참기름까지 건네준다. 이런 이런 우리는 아주 가벼이 빈 손이었다. "저희 빈 손이 부끄럽네요......" 신랑감조차도 부모님이 이런 선물을 준비한 줄 몰랐다나. 서로 어렵고 어색한 상견례를 마친 후 전철을 타고 또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대 한파가 몰아치던 날, 거사를 치룬 긴장이 풀리면서 며칠 몸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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