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일곱 편의 단편을 모은 '혼모노'는 작년 상반기 손꼽히게 많이 팔린 책이다. 궁금해서 읽다 보니 매 작품마다 결말이 인상적이다.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아 이걸까 저걸까 생각해 보는 재미가 있다. 소설은 끝났지만 그 유니버스 안에서 나만의 여정을 떠나게 한다. 또한 마지막 문장에서 '그렇지' 이거구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혼모노는 本物 즉 진짜라는 뜻이란다. 진품, 진짜배기. 여러 개의 단편 중 '혼모노'는 신애기의 출몰로 설 자리를 잃은 삼십 년 박수무당이 과연 무엇이 진짜인지 갈급하며 칼 춤을 춘다. 굿판에 나란히 선 신애기와 박수무당은 누가 진짜인지 가려내겠다며 피와 땀을 쏟아내다 신애기가 나가떨어진다. 박수무당은 명예 젊음 시기 반목을 내려놓으니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큭큭, 큭큭, 큭큭.'
흉내만 내는 사람이 박수무당인지, 신애기인지, 그 둘을 찾아온 장수할멈인지 독자는 어느 순간 그 답을 찾고 있다.
출세지향 건축가이자 교수 여제화는 입신양명을 위해 내무부장관의 지시로 건물을 지어야 했다. 특별히 너에게 기회를 준다며 기초가 단단하고 성실하며 합리적 설계로 흠잡을 데 없던 제자에게 설계를 제안한다. 마침내 완성된 삼층 규모의 건축물은 사람이 생활할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특히나 매일 정오 단 십 분만 햇빛이 통과하는 작은 창 여덟 개는 건축가의 의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건물이 완성된 시기는 1980년.
후세 사람들은 이 건물을 '구의 집'이라고 부른다. 설계를 완성한 사람의 이름은 구보승, 외부에는 수련원이라 알려졌지만 실제 용도는 반국가세력을 잡아다 고문하는 곳. 두려움의 대상, 구(懼)의 집인가, 세상의 구원을 바라는 구(救)의 집인가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기 10분 전, 양수가 흘러 신음하는 딸을 두고 시아버지와 대거리를 하는 엄마, 손녀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선을 넘은 시아버지는 원정출산을 떠나는 손녀의 길을 막아서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시아버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며느리 귀에는 '잉태기' 딸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제대로 듣지 않는다. 말은 하고 있지만 듣는 이는 없는 세상, 제대로 된 말조차 사라진 세상에 잉태를 꿈꾼 소비지향의 딸. 가진 자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들의 2세는 적당히 타협하며 물질만을 추구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낀다. 엄마가 진짜인지 할아버지가 진짜인지 서진이는 알 수 없다.
작가 성해나는 '잉태기' 마지막 문장으로 말한다.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도'
흔들리는 청춘은 세속에 찌들어가며 '메탈'을 사랑한 그 창고 아지트를 잊어가지만 더는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4년 만에 드럼세션 시우에게 전화를 건다.
'또다시 무모한 짓을 벌이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엔딩이다. 전적으로 내 취향.
배우 박정민은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며 주변 감독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단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빛나고, 몰입이 끝내주는, 우리가 잊으려고 애쓰는 한 세상을 기어이 보여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