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린 소설집
옥색 하늘에 노란 반달이 떠 있고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펼쳤다. 실제 책표지는 여기 옮긴 사진보다 훨씬 색감이 진하고 채도가 어둡다. 봄밤, 검푸른 나무에는 형광 분홍빛 꽃이 점점이 찍혀있다.
사느라 보드랍게 쓰다듬지는 못했지만 뿌리 깊은 사랑은 흔들릴 줄 몰랐다. 보드랍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은 수신자에게 가 닿지 못했다. 상처 입을 줄 알면서도 앵무새를 돌보다 어느새 다시 사랑을 배운다. 늙은 그녀에게 앵무새는 다시 찾아온 봄밤 '아주 환한 날'이었다.
임신성 당뇨 때문에 자신을 낳고 시력을 잃었다는 말을 우연히 들은 사촌 언니는 나이 마흔이 되도록 엄마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었다. 엄마의 꿈이었던 대학교수가 되어 주었고 매일 저녁 산책을 나가 귀로만 들리는 엄마의 세상을 세세하게 입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마침내 자신의 욕망을 찾아나가는 봄밤 '빛이 다가올 때'
꽃잎이 가로등 아래에서 흐드러진 봄날 그녀와 유타는 상실의 고통에 대해 위로하고 공감하며 같이 울어주었다. 유타는 장사하는 부모 대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위해 프랑스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유기견을 만나 사랑을 주고받고 달빛 아래 수많은 봄밤을 거닐었던 그녀는 "우리가 몇 번의 봄을 더 함께 볼 수 있을까" 개의 귀에 속삭였었다. 상실의 무게 앞에 마주한 우리. '봄밤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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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일곱 편의 소설에 공통으로 흐르는 기조는 차가운 겨울을 지나 향긋한 꽃내음이 퍼지기 시작하는 봄밤.
달빛 아래여서 더 화려하게 빛나는 꽃잎들. 차가운 겨울이 있어 봄이 오고 그 봄밤 향기가 더 짙어진다.
아빠와 딸의 해묵은 오해가 녹아내리고 무채색 삶을 살았던 사촌언니는 형형색색의 사랑을 배워나간다. 나이 마흔에. 누구에게나 봄은 오고 봄밤은 깊어간다.
달콤하고도 고통스러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봄
(p.s. 2025년 2월 출간되었고 5월에 10쇄를 찍었다. 읽어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