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영화 '여행과 나날' 초반 기차는 터널을 지나며 암전이 된 듯 이어 곧 눈 세상이 펼쳐진다. 마치 소설 '설국'처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시마무라는 설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요코를 보게 된다. 정성껏 남자를 간호하는 여인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고왔으며 기차 창문에 비친 그녀의 자태는 사진처럼 그의 뇌리에 박히고 말았다. 이 마을에 내리는 눈은 일고여덟 자(尺) 정도인데 열두 세 자가 넘을 때도 있다. 성인 남자의 키를 훨씬 넘기는 눈 세상 설국에서 주인공 시마무라는 하얀 밑바닥을 디디지 못하고 부유한다. 이유는 뭘까
일본이라는 나라의 전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중에서도 설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동양적인 정서가 내리는 눈처럼 소리 없이 소복이 쌓여 독서가를 채운다.
샤미센이라는 일본 전통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게이샤는 아니었고, 연회를 도와주러 오가는 눈처럼 깨끗한 고마코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시마무라는 설국에 왔다. 고마코는 춤 선생 아들인 약혼자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결국 게이샤로 나섰지만 죽어가는 약혼자의 임종을 지키는 대신 기차역에서 시마무라를 배웅하는 마음은 뭘까
하얀 백지 같은 세상에 각기 다른 행보로 움직이는 고마코와 요코
도쿄에서부터 정성을 다해 간호한 애인이 죽자 매일 그의 무덤을 찾아가는 요코의 순수한 모습에 또 반한 시마무라.
애인을 잃은 후 온천여관의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도 온천탕에 들어가면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요코.
시마무라에게 도쿄로 데려다 달라는 그 여인의 마음은 무슨 색.
한 폭의 겨울 풍경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뜨겁고 차가우며 또 뭔가 씁쓸하다. 특별히 의미 있는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 풍광을 묘사한 문장들을 읽다 보면 주인공들의 대화가 그 위에 얹힌다. 눈 위에 쌓이는 발자국처럼 치열한 삶이 있는가 하면 차가운 죽음이 있는 세상이 설국이다. 활활 타오르는 삶을 덮어버리고 소리 없이 녹여버린다.
그래서 이 소설에 내내 흐르는 시마무라, 고마코, 요코의 기조는 허.무.함. 이다.
오래되어 책이 많이 낡았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자연과 인간 운명에 내재하는 존재의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인 언어로 묘사한다. '회화적인 언어'라......딱 맞는 표현이다. 문장을 읽으면서 내내 눈 내린 마을의 풍경과 전통적인 의상, 풍속등을 그려보게 된다.
설국 속에 눈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여인네들이 부지런히 지지미를 만드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