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쩌다가 여기에 이르렀는가?

<세인트 존스에서 살아남기>

by 치열한 인문학도

고등학교 때였다. 내가 이 학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여느 때처럼 그날도 진로 선생님은 그동안 보여주신 수많은 다큐멘터리 중에 하나를 트셨다.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EBS에서 기획한 총 6부작으로 된 교육 다큐멘터리였다. 우리나라 교육의 현재 상황은 어떠하고 문제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등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그날도 '오늘도 수업은 다큐멘터리로 때우시려는구나'하고 그 영상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멍 때리고 있었다. 창문 밖에 운동장도 한 번 봤다가 반 애들이 뭘 하는 지도 한번 봤다가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TV에서 내 마음을 잡은 장면이 나왔다. 세인트 존스라는 대학이 있는 데 그 대학에서는 수업시간이 끝나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어디서든지 책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학년, 반, 나이 상관없이 그저 길 가다가도 수업에 관해서 철학에 관해서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반고를 다녔고, 그곳에서 오직 목표는 좋은 대학,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외의 것은 항상 학교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기 십상이었다. 난 그곳에서 항상 나와 책 얘기를 할 사람, 내 꿈, 내 삶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사람이 간절했다. 또, 그때 나는 한창 상담과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나에게는 세인트 존스는 꿈의 학교 같이 느껴졌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육에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 그 학교는 정말 꿈같았다. 그날 다큐멘터리를 집에서 다시 틀어봤다. 세인트 존스가 나오는 장면과 회차는 정말 여러 번 봤다. 지금도 기억난다. 학생들이 풀 밭에 동그랗게 모여서 책을 펼쳐 들고 서로 열 띄게 토론하는 장면이.


그러나, 그날 본 학교는 현실에 부딪혀서 서서히 잊혀 갔다. 나는 성적을 잘 받아야 했고, '좋은 대학'에 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기 초가 되자 담임 선생님과 진로 상담을 했고,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았고, 그것을 목표로 공부 계획도 세웠다. 그렇게 세인트 존스 대학은 그저 꿈으로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렇게 또다시 입시를 위한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던 중, 난 국어 선생님을 만났다. 국어 선생님은 항상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분이셨다. 가끔은 자신이 쓰신 글을 가지고 와서 수업을 할 때도 있었다. 국어 교과서는 선생님께는 그저 도구였을 뿐, 선생님의 수업은 언제나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해라.'로 끝이 났다. 사실상, 점수를 위한 수업은 아니다 보니 수업을 듣는 학생은 극소수였다. 많은 반 친구들은 그 선생님의 수업 시간만 되면 엎드려서 잤고, 나와 몇몇 친구들 만이 그 수업에 흥미를 느끼며 들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그 국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적을 정도로 그 선생님의 수업에 크나큰 흥미를 느꼈다. 나중에 다른 선생님께 들은 것인데, 그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좋아하는 극소수의 학생과 관심 없는 학생들로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고 들었다. 어쨌든, 3학년 내내, 그 수업은 내게 너무나 재미있었고, 내가 수업 끝나고 유일하게 질문하고 열심히 한 수업이었다. 내가 그 어떤 이상한 질문을 해도 선생님은 재미있는 생각이라고 들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쓴 시들을 선생님께 보여드린 적도 있었다. 그만큼 정말 내게는 단비 같은 수업이었다.


그 국어 선생님 덕분에 난 다시 인문학을 내 삶 속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싶은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3학년 때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졸업 후 적어도 책을 읽고, 인문학 강의도 듣고, 1년 간 여러 가지 알바도 해보면서 내가 정말로 뭘 하고 싶은 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런 원대한 꿈을 꾸었지만, 졸업 후 현실은 내 생각과 많이 다르게 흘러갔다.


일단 일은 해야 했으니 알바자리를 구했다. 그러나, 나를 규칙적으로 살게 했던 스케줄이 없으니, 나는 점점 더 게을러졌다. 알바는 계속했지만, 그것 말고 나를 잡아줄 무엇인가가 없었다. 다른 활동이나 프로그램 등을 찾아보려고도 내가 뭘 해야 정말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정작 제대로 하는 것은 없었다. 읽으려 사놓은 책은 점점 더 늘어갔지만 먼지만 쌓여갔다. 그리고 대학에 간 내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MT를 가고, 연애를 하고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못나게 느껴졌다. 그랬다 정말. 나는 내 처음 목표와 다르게 제대로 하는 것이 없었다. 나는 '나는 뭘 하고 싶은 지'와 '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가'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했다.


그렇게 나는 20대의 첫 시작을 방황과 함께 했다. 스스로에게 한심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던 중 나는 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지 못하는지 정말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나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를 하고 외부의 상황에 흔들리는지 화가 났다.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정말 인문학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러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학교가 다시 떠올랐다. 이 학교라면 정말 내가 고3 때 가졌던 나의 꿈인 인문학을 삶에 적용시키는 삶을 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의 반대에 부딪혔다. 내 외가, 친가 가족들을 다 합쳐서 그 누구도 그전에 유학을 간 적이 없었기에 엄마의 반대는 더욱더 심했다. 딸을 외지에 혼자 보낼 수 없었고 더군다나 '철학과'라니! 미래도 불투명하고, 정말 졸업 후 뭘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과가 아닌가?


또, 미국이라니! 학비도 다른 학교보다는 싸다고 해도 정말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 무엇보다도 졸업 후 나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과 외지에 딸 혼자 보내는 것을 정말로 싫어했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내가 왜 이 학교를 가야 하는지.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던가. 엄마는 내게 유학을 '보내주겠다' 허락했다. 그러나 단, 조건이 있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눈이 높아지지 않을 자신이 있냐는 것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고, 졸업 후 미래가 불투명해도 유학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보지 않을 자신 있으면 가라고 했다. 나는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엄마의 허락을 결국 받아내었다.


그렇게 엄마의 허락을 받고 나자 지원하고 합격을 하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코로나가 터졌고, 나의 입학은 그렇게 1년이 미뤄졌다. 그렇게 또다시 1년을 보내고 나는 2021년 8월에 세인트 존스에 입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