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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Jan 28. 2016

미리 느껴 본 부재와 죽음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을까?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들까? 무엇을 가장 아쉬워할까? 주인공은 나 대신 죽음, 그리고 무언가의 부재를 대신 미리 느껴주었다. 그에 의하면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막상 죽기 전에는 별로 소용이 없는가 보다. 


소설은 죽음을 코앞에 둔 주인공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어느 날 주인공을 꼭 닮은 악마가 나타나서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없애면 그 물건 하나당 하루치의 생명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주인공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 일주일간 세상에 있는 그 물건들이 다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이상하게도 물건들이 사라질 때마다 아름다운 추억은 살아나서 주인공은 후회와 함께 마지막 추억여행을 하게 된다. 때로는 첫사랑, 때로는 어머니, 때로는.. 아버지.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무엇인가를 잃고 나야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후회하게 되는 바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것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대한다. 귀한 줄 모르고. 주인공의 어머니가 늘 했던 말도 그것을 암시한다.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겠지." 나의 오늘도 그렇다. 가장 귀한 것들을 귀하게 대하고, 중요한 일들을 서둘러 한 날은 내가 살아온 날들 중 며칠이나 될까. 


다른 어떤 물건도 그렇지만, 나에게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감됐다. 가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라는 책 속 말에 많은 생각이 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선순위여야 하는 가족들이 나의 어제에는 과연 몇 순위였을까? 


모든 것이 잘 있으면 그것의 부재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책이었다. 죽음을 선고받기 이전에 미리 나의 죽음을 볼 수 있었고,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기 전에 미리 소중한 것들을 잃어 보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일 거다. 미리 경험해보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해 후회가 없길.  




* 남겨두기 


"쓰타야는 친해진 후로도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고, 시선을 마주쳐준 것도 두세 번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좋았다. 평소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그가 영화 이야기만 시작하면 순식간에 유창해지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사람이 순수하게 사랑스러운 것을 이야기할 때, 거기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감동이 우러난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 96 p. 


"내 인생이 영화라면, 나는 엔딩롤이 끝난 후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이고 싶다. 작고 밋밋한 영화일지라도 그 영화에서 위안과 격려를 받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엔딩롤 후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내 인생이 계속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 111 p. 


"양배추는 언젠가 나도 잊어버리게 될까? 양배추의 세상에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날이 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무심히 지내온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양배추와 산책을 하고, 양배추에게 밥을 주고, 양배추와 같이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남은 인생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그 곡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밥은 몇 번, 아침인사는 몇 번, 재채기는 몇 번, 웃음은 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웃을 수 있을까?" - 135 p. 


"내가 살아온 삼십 년간, 과연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해왔을까? 정말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말을 해왔을까?

나는 어머니에게 거는 전화 한 통보다 당장 눈앞의 수신 목록으로 전화를 거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정말로 소중한 것을 뒤로 미루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눈앞의 것을 우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이다.

눈앞의 것에 쫓기면 쫓길수록 정말로 소중한 것을 할 시간은 사라져간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 소중한 시간이 사라져가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잠깐만 멈춰서 보면, 어떤 전화가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한지 금방 알았을 텐데.

그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본질적이지 않은 무수한 일에만 쫓겨온 결과, 인생 마지막 시점에 '이건 아니었는데'라며 한탄하는 것이다." - 136 p. 


"왠지 쑥스러워서 꽃 한 송이 사드리지 못했다. 왜? 왜 그런 간단한 것도 못했을까? 왜 머지않아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상상할 수 없었을까?" - 184 p. 


"다만, 당신에게는 단 하나 좋은 점은 있었다고 봐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당장 닥친 세상을 살아가는 일상과 그 세상을 지탱하는 수많은 상황과 신기한 구조에 관해 상상해본 뒤에 살아가는 일상은 분명히 크게 다르니까." - 19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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