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경쟁 때문에.
고1 2학기 기말고사를 일주일 남긴 어느 날.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온다던 웬디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뭐 해?"
"엄마 집 청소하고 이제 저녁 준비하려고 하지. 왜?"
"그냥..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그럼 오늘은 야자 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올래?"
"아니~ 집에 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야"
...
웬디는 "그냥.."이라고 했지만, 캘리는 안다.
웬디에게 뭔가 우울한 일이 있었음을...
평소에 11시까지 공부하고 오던 웬디는 9시에 왔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척) 인사를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깨가 축 쳐져보인다.
캘리는 굳이 묻지 않았다.
간식 좀 챙겨주고 평소처럼 식탁에 앉아서 책을 보았다. 핫초코를 마시며 멍하니 귤을 오물오물 먹더니 얘기를 꺼낸다.
"엄마, 우리 반 애들이 평소에는 진짜 좋고 착하거든? 그런데 시험기간이 되면 좀 변해"
"어떤 면에서?"
담담히 물어봤다.
"아까 우리 반 친구 한 명이 수업시간에 필기를 제대로 못했다며 반장한테 오늘 필기 좀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거든. 그런데 반장이 머뭇거리면서 '나 이번에는 필기를 엉망으로 했어. 그래서 볼 게 없을 거야. 웬디한테 보여달라고 해' 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거야. 우리 반에서 공부도, 필기도 반장이 제일 잘하거든? 그래서 반장선거 할 때 자기 공약도 그거였어. 자기가 필기 열심히 해서 반 친구들한테 다 보여준다고. 그런데 갑자기 요즘 필기를 안 보여주려고 해"
"그래서 그 친구한테는 웬디가 필기한 거 보여줬어?"
"응. 나는 내 거 보는 건 전혀 상관없어. 필기 공유하는 게 등수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다들 예민한지 모르겠어. 그리고 수행평가 일정도 친구들이 서로 얘기를 안 해. '나 말고 다 몰랐으면...' 하는 느낌이라니까. 그런 느낌이 난 너무 싫고 슬퍼"
"그러네. 좀 싫었겠다"
"응. 우리 반 친구들 평소에 얼마나 좋은 애들인데~ 서로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막 그래"
"그래서 그런 모습들이 더 적응 안 되겠구나"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어"
"그 착한 친구들이 문제겠니. 이눔의 대한민국 교육이 경쟁 구도라서 그런 거지"
평소에 반 친구들을 너무 좋아했기에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많이 슬프고 우울한 모양이다.
얘기를 하면서 속상해하는 웬디를 보니 캘리는 마음이 아프다.
경쟁만 아니면 그렇게나 마음 따뜻한 친구들인데, 환경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도 충분히 좋은 평가도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미 교육선진국에서는 절대평가를 기준으로 삼고 개인 각자의 역량을 키우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여전히 줄 세우기로 평가를 하고 있는 건지 안타깝다.
교육과정 개정을 그렇게 자주 하면서 평가방식 개정은 큰 틀을 못 깨고 있는 것인지..
아니, 어쩌면 안 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가를 하는 주체들이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