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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겸점심 Nov 26. 2018

#3 경리단길 - 포린 북스토어

서점은 관광지의 가능을 하는가

이번 여름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순례길이 끝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파리로 돌아와야 했는데 일정이 조금 남아 파리에 2박 3일 정도 묵게 되었다. 나는 사실 ‘관광’이 목적인 여행을 매우 싫어한다. 근거 없는 반골 기질인지 남들이 다 가는 여행지에는 흥미가 없다. 그래서 파리에 2박 3일이나 있었는데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등은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루브르에 들어가서도 보고 싶었던 북유럽 회화만 보고 나왔다. 몇몇 미술관만 기웃기웃하고 카페에 앉아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었다. 사실 파리에서 제일가고 싶었던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셰익스피어 엔 컴퍼니’라는 서점이다. 퐁녜프 다리를 지나고 골목을 돌아 그 서점을 처음으로 봤을 때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선하다. 많은 의미에서 오늘 찾아간 경리단길의 ‘포린 북스토어’는 파리의 서점과 매우 흡사하다.

이태원에서 녹사평으로 가는 길

마을버스를 타고 녹사평 역에 내리면 큰길 하나가 전부다. 몇몇 외국인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태원만큼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지는 않는다. 이런 내리막길 한켠에 ‘포린 북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다. 포린 북스토어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서점이다. 헌책방이, 심지어 외국책만 취급하는 헌책방이 서울시 미래유산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서점 주인은 할아버지신데 76년부터 이 서점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용산 미군기지와 대사관들이 근처에 많아서 자연스레 외국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이 서점을 가보면 절반 이상의 손님은 외국인인 듯하다. 할아버지는 나름 유창한 영어로 찾는 책을 물어보시고 뚝딱 바로 찾아 주신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론리 플래닛

포린 북스토어는 말 그대로 외국 서적을 취급한다. 그래서 서점에 들어가면 이국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 입구에는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이 천장까지 쌓여 있고 한켠에는 스티븐 킹 소설이 제목 별로 착착 정리되어 있다. 가게 안쪽에는 파울로 코엘료, 해리포터 등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을 법 한 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그것’을 조금 뒤적거리다가 할아버지를 만났다. 사진 촬영이 되냐고 물었더니 사진 촬영은 불가하다고 하신다. 어떻게 사정사정 하니 피해 안 가는 선에서 두 세 장만 찍어가라고 하셨다. (찍다 보니 3장 넘게 찍었네요... 죄송합니다..)

안에서 밖

사실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것은 ‘셰익스피어 엔 컴퍼니’도 똑같다. 파리에 있을 때는 왜 사진 촬영이 안되는가 답답했다. 사진 촬영을 하고 인터넷에 올리면 서점을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좋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블로그에 사진이 올라가는 것은 ‘서점’이라는 특수한 가게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서점 내부 사진을 찍으면 사진이 매우 잘 나온다. 질서 정연하게 사방이 책에 둘러싸여 있으니 사진이 못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그냥 이쁜 사진, 끝이다. 관광지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광지가 되는 것이 서점에게 좋은 일일까? 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은 굳이 블로그라는 매체가 없더라도 자주 방문한다. 서점이 관광지가 되면 방문했다가 책을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매출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 책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에게 책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대중매체나 인터넷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행동이다. 책에 대해 포스팅하는 나는 책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가. 부끄럽다.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흔적들

‘독서가 취미라는 학생, 그건 정말 우습다. 노동자나 정치인이나 군인들의 취미가 독서라면 모르지만, 책을 읽고 거기에서 배우는 것이 본업인 학생이 그 독서를 취미쯤으로 여기고 있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닌가.’

조그마한 카운터

포린 북스토어는 훌륭한 서점이다. 훌륭한 서점인 만큼 운영이 잘 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본 수많은 서점 중에서 가장 다시 가보고 싶다.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책이나 뒤적거리면서 재활용지 책에서 나오는 콤콤한 향기에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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