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은은한 소리

내 이야기에서 너를 읽을지도 모르지

by Sylvan whisper


보통은 이름의 한자를 알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후에도, 부모님의 곁을 떠나 살게 된 후에도, 내 이름의 뜻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이름에 쓰이는 한자들은 하나씩 곱씹어 보아도 도무지 서로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林鐘珏 수풀 림, 쇠북 종, 쌍옥 각” 숲과 쇠북, 두 개의 옥구슬, 그러니까 숲과 악기와 보석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정말 우스운 것은 그 의미에 대해서 부모님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이었다. 자식의 이름 뜻을 모르다니! 덕분에 나도 그렇게, 내 이름의 뜻을 찾아보길 자연스레 잊고 살았다. 그저 특이한 이름이겠거니, 그런 유별난 점이 묘하게 좋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아가던 중, 아버지가 어떻게 알아내셨는지 의미를 풀이해 주셨다. 처음 듣게 된 그 순간이 퍽 인상 깊다.


숲 속의 은은한 소리, 내 이름의 의미는 '숲 속의 은은한 소리'라고 하였다.


숲 속에는 나뭇잎과 풀잎들이 바람에 스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따금 새들이 울고 풀벌레 울음소리가 더해진다. 그런 소리가 퍼지는 숲은 초록이 편안하다. 풀냄새와 흙내음이 시원하고, 버적거리는 발소리나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리더라도 그것은 불협화음의 해방과 같다. 이러한 숲 속의 소리는 마치 ‘배경’ 같다. 배경이란 것은 어울림이다.

나는 내 이름처럼 살고 싶다 생각했다. ‘숲 속의 은은한 소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누구든 품을 수 있고, 어떤 소리가 나더라도 내 안에서 자연스러울 수 있는 숲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내 꿈이 되었다. 그리고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와 수단이 필요했다. 묘하게 특이한 내 이름, 뭔가 문학적인 것 같기도 한 내 이름이 좋았던 것처럼 나는 ‘글’이 좋았다. 내 이름이 내게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문학’이라는 것이 지닌 힘에 끌렸던 걸까? 나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처음엔, 그러니까 내가 처음 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던 때엔 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명확히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별안간 기록으로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무 표현도 없던 차가운 바위 같지만 분명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지던 할아버지가 떠나셨을 때 나는 처음으로 글이란 것을 썼다.

학창 시절을 함께하던 누구보다 남을 잘 챙겨주던 내 친구가 갑자기 돌연사해 버렸을 때, 나를 가장 아껴주던 이모가 집에서 홀로 심정지로 쓰러져 생의 불꽃이 꺼졌을 때,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죽고 싶다며 울부짖었을 때, 그리고 그동안 내가 다양한 입장에서 보고 들었던 죽음들이나 내 감정의 격변을 일으켰던 수많은 실패와 낙담들, 그런 아픈 것들이 내 가슴에 날아와 지리멸렬한 상처들을 남겨놓았을 때. 나는 글을 썼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글이란 것은 내겐 어떤 분출이었다. 그리고 그 분출은 치유와 회복을 선사했다. 누가 내 글을 읽어주고, 아픈 내게 위로와 위안을 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표현’이라는 것은 그 인과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기묘한 힘을 지녔다. 나는 이 힘을 믿게 되었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한 표현만으로도 치유가 되는데 글은 더 큰 힘이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내 글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일말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단 한 명 일지라도. 표현의 힘을 믿었던 나는 그렇게 ‘공감’의 힘을 믿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공감에도 내가 느꼈던 이 기묘한 힘, 치유와 회복의 선사가 느껴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배경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든 품을 수 있고, 어떤 소리가 나더라도 내 안에서 자연스러울 수 있는 숲. 내 이야기가 은은하게 흐르는 숲 속에, 내 글을 읽어주는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이 내 숲 속 나무 한 그루에 기대어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다. 그저 조용히 머물다 가도 좋다. 나는 그 사람을 나라는 숲 속의 소리로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꿈이 되었고, 글이란 것은 그런 내 꿈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책을 쓰는 것은 내 목표가 되었다. 그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아직 가시에 찔리면 아프고, 슬프고, 때때로 화가 난다. 누군가를 품기엔 너무나 작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나기 같은 슬픔과 울렁거리는 화, 송진 같은 끈적한 눈물을 누군가 품게 된다면, 내 부족한 은은함이라도 ‘괜찮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펜을 집어든다. '숲 속의 은은한 소리', 이 작은 흔들림이 결국 은은한 바스락 거림을 만든다.


‘내 이야기에서 너를 읽을지도 모르지’ 내 숲 속의 작은 소리에서 당신도 묘한 힘에 의해 치유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 작은 기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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