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나는 오늘의 온도가 몇 도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늘의 '우리 사이에 온도'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온도는 옆으로 번지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짧았던 만남 이후에도, 아직 내게 여운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마치 새 학기가 시작하기라도 한 듯, 설렘이나 긴장 혹은 어색함 따위의 말로 대변할 수 있는 '첫 만남'이라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한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오랜 동경을 품어왔고 혼자서 글을 써온 지 몇 년이 지난 걸까. 첫 에세이를 쓴 것이 10년, 처음으로 일기장이란 것에 눌러 담은 활자를 채워나가기 시작한 것이 15년 전의 일이다. 일기라는 것도 글이라고 쳐준다면 글을 써온지는 15년이 되었다.
글을 쓴다라는 취미는 간혹, 아니 높은 확률로 고독한 듯하다. 사실 외로움을 느낄 필요는 없는 취미이긴 하지만 필연적으로 혼자 하게 되는 작업이고 점점 내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이 나라는 우주 밖의 '타인이나 사물'일지라도 내 머릿속 혹은 내 마음속의 언어를 정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나에게 수렴하는 활동이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나와 같은 부류, 적어도 글을 쓴다는 점에서 나와 같은 부류인 사람들을 만났다.
'어떻게 처음 글을 쓰게 되셨나요?'
'어떤 글을 주로 쓰시나요?'
'작가님이 전에 쓰셨던 그 글 말이에요....'
재밌는 것은 이 글을 쓴다는 영역 안에서도, 다들 그 동기나 관심사 혹은 방향성과 메시지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오늘의 재미를 느꼈다. 그들과 나의 닮은 구석을 찾고 또 다른 구석을 찾았다. 타인과 다른 구석을 찾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그럼에도 결국은 수렴하게 되는 통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그들에게 유대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실제로는 처음 만난 분과 포옹을 하기도 했는데, 먼저 두 팔을 벌려 주셨던 그분도 그리고 덩달아 자연스럽게 팔을 들어 올린 나도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꽤나 자극적(?)이었던 오늘의 기억 중에서 지극히 내 중심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무조건 더 열심히 써, 동생은 크게 될 거야!' 어떤 작가님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기도 했고
'작가님 작품 보고 눈물 날뻔했어요' 다른 작가님은 참 부끄러운 칭찬을 외쳐 주셨다.
'나도 읽어봐야겠네' 또 다른 작가님은, 쓰는 일을 하는 자라면 언제나 기쁠 예고를 해주시기도 했다.
'솔직히 감동받진 않았어요' 삐쭉한 말을 뱉어준 작가님도 있었다. 나를 대하는 말의 단어들이 한결같이 통통 튀는 분께서 해주신 말인데, 재미있는 것은 나는 항상 이 말들이 둥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신기한 능력을 지니신 분이다.
안타깝게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으나 대화 다운 대화를 시작도 못한 분들도 많았다. 작가님들이 모두 모인 뒤에 내가 자리를 뜨기까지 보낸 시간은 거진 3시간 정도뿐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듯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나는 퍽 조급하기도 했다. 이분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야 하는데, 이분들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는데 말이다.
처음 작가님들 개개인의 자기소개를 들었을 때부터, 단 한분도 빠짐없이 조용하지만 분명한 열정을 지니고 계신 분들이었다. '멋지다'는 생각이 안 드는 분이 없었다.
사실은 퍽 주제넘은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온도를, 그 생각의 온도를 재단하는 일 말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의 온도를 재지 못했다. 너무 짧기도 했고, 겸손을 가장한 무능력으로 인해서이다.
나는 오늘의 온도가 몇 도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늘의 '우리 사이에 온도'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온도는 옆으로 번지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짧았던 만남 이후에도, 아직 내게 여운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여운을 마주한다. 그들에게 많은 온도가 내게 전이되었기 때문에 가시지 않고 남아있는 이 온도들의 운치가 있다. 그들의 온도가 몇 도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하게 그들에게서 전이되어 온 무언가를 느낀다. 그 무언가를 간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