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31] 우리의 원동력

임신 21주차, 도쿄 태교여행 Day 5

by Sylvan whisper

도쿄 태교여행의 마지막 날, 맑은 날씨는 괜스레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아쉽게 만들었다. 오늘 아침도 도쿄 한가운데의 황궁을 한 바퀴 도는 황궁런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맑은 날씨와 주말이 겹치자 일본 현지의 러닝 인구는 눈에 띄게 많아졌고, 나 역시 이곳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든 듯 그들과 나란히 줄지어 달렸다. 그렇게 줄지어 달리는 동안, 문득 손목의 시계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아직 오전이었지만, 오늘이라는 하루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아,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이 생각 하나로, 같은 길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덕분에 마지막 하루를 한층 더 또렷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열 수 있었다.




오늘의 러닝 간식, 아내를 위한 세미 브런치는 내가 찾아둔 카페가 아니라 아내가 오래전부터 점찍어 두었던 소금빵이었다. 소금빵이 처음 탄생했다는 제과점이었는데, 아내도 나도 소금빵을 좋아하는지라 자연스레 기대가 모였다.

구글맵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어느새 10km를 훌쩍 넘겨버렸다. 황궁에서 멀어질수록 높아지는 건물들 사이를 헤쳐 나가 마침내 제과점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거의 도착하기 전부터 고소한 냄새가 멀리서부터 흘러나왔다. 소금빵의 ‘원조’로 일본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집이었기에 당연히 줄을 서야 할 거라 생각했지만, 운이 좋게도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러닝을 한 덕분에 대기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내가 기대하던 이 소금빵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져다줄 수 있게 해주었고, 덕분에 아침은 더욱 기분 좋게 흘러갔다. 한껏 기대를 품고 가게에 들어가 아내가 주문한 빵과 내가 고른 빵을 담아 다시 길을 나섰다.

담백하고 고소한 향에 자연스럽게 군침이 돌았다. 마침 내 앞에서 소금빵을 구매한 사람은 가게를 나서자마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이상하게, 나 역시 얼른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따뜻할 때 아내에게 먼저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따뜻할 때 먼저 먹지!”

“자기 얼른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얼른 왔지~”


이 가게는 숙소 근처가 아니었기에, 테이크아웃 후 걸어서 돌아간다면 소금빵은 금세 식어버릴 터였다. 그래서 나의 걸음, 아니 뜀박질은 점점 더 빨라졌다. 아마 황궁에서 한창 달릴 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숙소를 향했을 것이다. 거리 때문인지, 달리며 맞은 바람 때문인지 빵은 끝내 완연한 온기를 유지하진 못했다.


가장 맛있는 상태의 소금빵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조금 식은 빵을 나눠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쉬움보다는 묘한 안정감이 먼저 들었다. 완벽한 온도도, 최상의 순간도 아니었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온도로 식어간 빵을 함께 먹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태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가장 좋은 상태로만 해주려 애쓰기보다는,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경험을 나누는 것. 어쩌면 태교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배 속의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루를 건네는 일 말이다.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함바그 정식을 먹고 우리가 좋아하는 편의점 아이스크림으로 디저트까지 챙겼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는 아내의 영향으로 시작해 이제는 우리 부부가 함께 즐기게 된 오래된 취미, 야구 경기를 보며 ‘귀가길’에 올랐다. 작은 휴대폰 화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얼굴이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말은 없었지만, 배 속의 사랑이까지 함께 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던 경기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 보니, 아쉬움이나 지루함을 느낄 틈도 없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아, 일본 음식 맛있긴 하지만 역시 한국 음식이 생각나긴 해.”


“집에 도착하면 이번 여행의 마무리는 뭘로 할까?”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면 우리는 늘 한국 음식이 최고라며 김치찜이나 김치찌개를 먹었다. 이번 태교여행의 마무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시큰한 김치와 밥을 먹으며 여행을 마쳤다.


아마 언젠가,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우리의 하루가 지금보다 훨씬 분주해졌을 때, 이 여행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때의 우리에게 이 태교여행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의 씨앗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줄 정보

1. 음식이던 다른 무언가이던 ‘최상의 상태’를 고집하기보다 같은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임신기 부부에게 더 지속 가능한 태교 방식이 될 수 있다.

2. 태교는 특정 자극을 주는 행위보다, 부모가 함께 보내는 시간의 밀도와 안정적인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3. 여행 중 공항 이동 시간은 부부가 대화를 나누거나 공동의 취미를 공유하기에 적절한 여백의 시간이다.

4. 임신 기간의 여행은 출산 이후의 이동·대기·일상 리듬을 미리 경험해보는 연습의 의미를 가진다.

5. 임신 중의 여행 경험은 시간이 지난 뒤, 부부가 다시 일상을 견뎌낼 때 심리적 자산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