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33] 물고기가 움직이는 것 같아!

임신 22주차, 첫 태동

by Sylvan whisper

임신 20주를 조금 넘기면서부터, 산모는 아기의 미세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그 감각은 생각보다 확실하지 않다. 태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처음 느껴지는 이 태동은 실제로는 아주 작고 조심스럽다. 배 속에서 무언가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정도라서, 엄마조차도 이게 정말 태동이 맞는지 몇 번이고 되묻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 이때의 태동은 아직 엄마만의 감각에 가깝고, 엄마가 아닌 누군가가 배를 만진다고 해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경험하는 태동은 보통 배 속에서 뭔가 보글보글 거리는 느낌이 난다거나 작은 무언가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난다고 하는데 아내는 며칠 전부터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다. 배 속에서 뭔가 꼬물거리는 느낌이 난다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마치 물고기가 천천히 헤엄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은 주로 저녁에 나왔다. 하루가 끝나고 불을 끄고 나면 혹은 하루일과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할때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배 위에 손을 얹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듣기만 했다. 물고기라는 표현이 묘하게 생생해서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 와닿지 않았다. 정말 그런 감각이 있을까, 아니면 아내의 몸이 만들어내는 착각 같은 걸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이 생명체의 태동이라는 것, 너무나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궁금증과 더불어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아내의 배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손끝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지금!” 하고 말할 때마다 나는 황급히 배에 손을 얹었다. 숨을 고르고, 괜히 손바닥에 힘을 빼고, 조금이라도 느껴보려 애썼다. 하지만 첫 몇일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내는 분명 느꼈다고 했는데, 나는 느끼지 못했다. 그 차이가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사랑이는 아직 아내의 세계에만 있고, 나는 그 바깥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웃으면서 넘기긴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투정어린 마음도 들었다. 태교여행을 다녀오고, 사진을 찍고, 아이 이야기를 자주 나누며 분명 유대감을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정작 이 감각 앞에서는 나는 여전히 ‘밖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 시간이 며칠쯤 이어졌다.


나는 그저 때가 되면 나도 느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바로 오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나는 별생각 없이 배 위에 손을 올렸다. 특별히 집중하지도, 숨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때, 아주 짧고 정말 미세하게 손바닥 아래가 꿀렁였다. 너무 작아서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순간적이라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나는 바로 손을 떼지 못했고, 다시 한 번 느껴보려고 가만히 있었다. 혹시 내가 괜히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런데 방금 전의 그 감각은 분명히 손바닥 안에서 지나간 것이었다. 이번에는 확신에 가까웠다.


“오.....!”




내 말에 아내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드디어’라는 말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내는 이미 며칠 전부터 알고 있던 세계에, 내가 이제야 한 발 들어온 셈이었다. 그 순간 느껴진 감정은 사실 엄청나게 대단하지는 않았다. 벅차다기보다는, 마음이 살짝 울렁거렸다. 마치 아주 얇은 막 하나가 조용히 찢어진 느낌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아이와의 유대감을 만들어왔다. 여행을 떠나고, 이름을 부르고, 미래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오늘의 감각은 그 모든 것과는 달랐다. 사진도, 말도, 상상도 아닌, 그냥 내 피부 위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내가 사랑이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오늘은 사랑이가 나를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 것 같았다. 아주 잠깐,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태동은 더 분명해질 것이다. 손으로도 더 자주 느껴질 테고, 어느 순간에는 배 위로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아내가 먼저 알고 있던 감각을, 나는 이제 조금씩 따라가게 될 것이다. 오늘은 그 시작이었다.


사랑이가 처음으로 나를 ‘알아보게 해준’ 날. 그 작은 꿀렁임 하나로, 나는 이제 더 이상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줄 정보

1. 임신 20주 전후부터 산모는 태아의 미세한 움직임, 즉 첫 태동을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

2. 이 시기의 태동은 매우 약해 ‘보글거림’이나 ‘물고기가 헤엄치는 느낌’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3. 첫 태동은 산모에게도 확신하기 어려운 감각이어서 며칠간 착각과 확인을 반복하기도 한다.

4. 임신 초기 태동은 태아가 아직 작기 때문에 산모가 아닌 타인이 손으로 느끼기는 어렵다.

5. 태아의 움직임은 일정하지 않아 같은 날, 같은 자세에서도 느껴졌다가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6. 아빠가 태동을 처음 느끼는 시기는 산모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7. 첫 태동을 직접 느끼는 경험은 태아를 ‘상상 속 존재’에서 ‘현실의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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