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마지막 주
팀의 유일한 기획자가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매번 이렇게 팀원들이 떠나갈 때 팀과 무관하게 다들 배웅해 주고 인사하고 덕담을 해주는 것이 일상인 곳이었는데 이제는 키보드에 손을 대는 일조차 귀하다.
이 회사는 여자가 70%가 넘는다. 그 중 남초인 우리팀에서 유일한 동성인 구성원이었는데 이제 나는 서비스 개선을 누구랑 고민해야 하나 싶다.
다들 서비스에 대해 요구는 많지만 요구사항은 없다. 요구사항을 말하라고 하면 요구만 한다. 요구사항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요구사항을 적으라고 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만들어주세요.’ 이제는 ‘그냥 만들어주세요.’를 풀어서 그려주고 정의해 줄 사람이 없다.
우리 팀은 길잡이를 잃었다.
‘창업했었다며, 기획서 써봤다며 네가 해도 되겠다.’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개발 배워보셨다면서요. 개발자들이랑 일 해보셨다면서요. 개발하세요.’ 이곳은 기획이 그냥 문서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누군가의 업무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베풀 예의는 없다.
이제 3년을 다닌 회사는 사라졌다. 사실혼 관계처럼 따지자면 4년 3개월을 다닌 회사가 사라졌다. 흡수됐다. 내가 ICT 인턴쉽을 나가지 못해서 안달 났던 회사는 신입으로 나를 받아줬고 나는 서비스에 온갖 애정을 들이부었지만 사라졌다. 그렇게 내가 애정하던 Microbot 시리즈는 Keymitt에게 넘어갔고 특허를 지키지 못해서 카피로 나온 미니빅푸시에게 그 자리를 뺏겼고 이제는 여기서 링크맘이 그런 신세가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한다.
혹자는 우리팀이 매번 우는 소리를 해서 그렇다고 한다. 옳은 소리를 하는 우리를 싫어해서 그렇다고 한다. 논리적이고 데이터로 설명하는 우리가 피곤하다고 한다. 안된다고 만 말한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 걸까. 하고 싶은 것만 개발하겠다고 해야 하는 걸까? 경영진 입맛에 맞춘 근본적인 고민은 배제된 보기좋은 것만 해야할까? 데이터 드리븐, 테스트 드리븐, 우리는 변덕 드리븐으로 가야하는 걸까? 공학자는 기술자는,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있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여러분을 서포트했습니다.라고 자료를 모아 전달해도 아니,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지표인데?라고 무시해 버리면 그게 진실이 될 수도 있는 곳에서 누군가는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기도 하겠다.
그전에 우리가 아닌 내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한 주다. 내가 숨겨놓은 심연에서 또 기어오르는 불안을 이젠 대체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 싶다.
완성될 생각이 없는 관계, 온 세상의 눈치를 보는 나, 잠들지 못하는 새벽, 울어도 울어도 비워지지 않는 설움, 네 수준은 그거밖에 안된다는 어른, 내가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인, 또 망가진 신체, 고장 나버린 미터기, 나를 신뢰하지 않는 애정, 감정을 뭉개는 걱정, 0과 1로 만들어서 유니코드로 보여주는 유서.
이번 주는 내가 제대로, 내가 바라는 만큼, 내 의지대로 얻은 결과라곤 액셀에 얹은 발이 힘을 주어 끌어올린 120km 밖에 없었다.
나는 이번 주도 살았다. 혀끝에서 죽음을 바라는 말이 수도 없이 맴돌아도 이번에는, 그리고 이번에도 뱉지 않고 삼켰다.
말은 삼키면 삼켜진다. 관심이 없으면 삼킨 게 말인지 마음인지 구분도 안된다. 내가 이번 주에 삼킨 것이 말일까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