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주 차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잘 자라는 말에 집착하기 시작한 순간은. 매일 옆에서 잠들던 이 가 사라진 다음날부터였을까, 아니면 매일 저녁 하루를 마무리하는 통화가 없어진 다음부터였을까. 내가 눈을 감고 눕는 그 순간에는 어김없이 잘 자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게 뭐길래.
잘 자라는 말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자 ‘잘 자’가 단순하게 ‘잘 자’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잘 자에는 수많은 마음들이 섞인다. 내가 잘 자길 바란다는 그대의 사소한 관심과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면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는 당신의 기도 그리고 내일도 안부를 나누자는 나와의 약속. 인정하기 싫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내 심연을 위한 자장가.
이제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쌓이더니 욕심을 더 부려서 다른 것을 얻고 싶었다. 욕심을 부린다는 것은 내가 얼추 회복되었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다행일 수 있으나, 어차피 또 얻을 수 없을 거라는 점에서 올 실망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롭다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는데, 요즘 집에 있기 싫은 거 보면 외로운 건가? 싶기도 하다. 외롭지않이야하는데 어딘가 공허한가 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나는 내가 연인에 대해 의존도가 높은 게 싫다고 말로 하는 것과 내가 생각보다 연인을 상대로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더라, 너무 싫다는 다르다고 하셨다. 결국 내가 뭘 싫어하냐를 아는 것보다 내가 지금 이런데 이런 게 싫어.라는 내 상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인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는 금요일 새벽이다. 품 안에 안을 수 없어도,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이젠 찾을 수 없으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그리고 잘 자 말고 다른 말. 마음을 꾹꾹 눌러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