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주 차
내가 시점을 특정할 수 없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걸쳐서 해온 연습이 있다.
외면하는 연습이다. 외면하는 연습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었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나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을 연습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나이를 먹고 에너지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졌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되지 못했다. 대신 얼마 없는 그들을 아끼려고 노력했다.
'내일이 마지막이라면, 분명 악함을 꺼내'
이번 주 출근하면서 내내 중얼거린 음율의 반비례다.
내일이 마지막이라면 나도 악함을 꺼낼까? 잠드는 순간부터 내일이 없기를 바라왔던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긴 하다. 어차피 내일 내가 없을 수 있는데 왜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주어야 하는 가.
내가 매년 크리스마스이브를 꺼이꺼이 울면서 보내는 것처럼 내가 사라지면 누군가에게는 그런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내가 결국 살아가는 것처럼, 그들도 결국 살아갈 것이다.
차오르는 숫자를 보면서 이 세상에 없는 주인공을 추억할 것이고, 기념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는 슬퍼하다 잠들겠지. 자리에 누우며 꿈에서라도 만나기를 고대할 것이고 사무치게 외로운 날, 주인공의 생일, 너무 기쁜 날, 내게 약속했던 순간들을 맞닥뜨리기 전에 몇 번이고 소리 없이, 눈물 없이 우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내가 겪었던 이런 순간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이미 떠나보냈는데,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 데 또 이런 순간을 맞닥뜨릴까 봐 불안해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불안을 영원히 떼어낼 수 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장을 더 많이 가는 나이가 온다던데, 나는 그때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가늠도 안된다. 그저 부디 앞으로의 장례식장에 걸린 영정의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떠난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올 때는 내 마음대로 오지 못했으니, 갈 때는 내 마음대로 가기를 바란다.
이 세상은 너무 치열하고 잔인하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기다리는 순간들, 내가 아끼는 것들을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나를 지키는 힘 따위는 필요 없다. 어차피 어떻게든 버텨가니까. 하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오래 볼 수 있게 지키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