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마지막주
소멸, 소실, 상실, 삭제, 사라짐.
어찌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을 나열했는데 모두 시옷이 들어가는 것인지, 왜 내 이름에도 시옷이 들어가고 개명하기 전 이름도 시옷이 들어갔었는 지, 그리고 왜 나는 이름을 선택할 때도 시옷이 들어간 이름을 고집했는지.
어쩌면, 주기적으로 소멸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이 끈질긴 운명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들과 닮고 싶었던 욕구가 있던 것은 아닌지 싶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너무 갑작스럽고 이유 없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다. 핸드폰을 끄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주체할 수 없는 소멸욕구를 흘려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태에서 가장 편안했던 상태는 다크모드 테마로 실행되어 와이드모니터를 채운 코드창이었다.
이 상태를 빨리 정리하고 싶어서 넷플릭스를 켰지만 하나같이 너무 밝았고, 원래라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봤겠지만 그 마저도 거부감이 들었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화면을 바꿔 온갖 유추할 수 있는 이유를 적어보았지만 아무것도 그 이유가 되지 못했다. 결국 다시 핸드폰을 켜 이 상태를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리가 깨져서 새로 교체된 것 마냥 투명하고 맑은 유리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무언가로 닦을 수 없을 만큼 더럽혀져 차라리 깨고 새로 설치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가던 대문에 걸린 글을 보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대체품이구나. 살아온 시간만큼, 이전의 내가 있던 자리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자리였을 것이라고 깨닫는다. 못내 그 사실이 서운하면서도 나 또한 누군가의 대체품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물론, 사실과 기억은 별개.
어쩌면, 그 사실이 결국 나 자신 그대로가 아닌 누군가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봐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깨끗한 유리가 된 지금의 내가 썩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