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2025년 9월 2주차

by 가애KAAE

예전에는 누군가 생일이라고 하면 당사자의 생일축하와 함께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라는 오지랖을 부렸었다. 아무래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철이 든 상태에서 동생이 태어나고 육아가 힘든 엄마를 지켜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부모라는 존재가 누구에게나 동일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그런 오지랖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출산이라는 인생이벤트가 빈번하게 일어니는 환경에 놓였다. 출산휴가를 떠나는 동료들과 출산을 준비하는 친구들, 백일사진, 돌사진 준비가 단톡방마다 일어난다. 이 시점에서 내 생일이 돌아오자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나를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빠가 입덧을 대신했다느니, 생라면을 많이 먹었다느니, 누가 엄마를 혼내는데 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느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예고 없이 찾아온 내가 마냥 반갑지는 않았을 텐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백일사진의

나는 그저 빵떡이 되어 웃고 있다. 다행히도 나를 제외한 둘 다 그늘진 웃음은 아니었다. 그 얼굴을 보면 내가 마냥 짐은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지금의 나보다 10살은 넘게 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엄마는 꿈이 뭐였을까. 아빠는 그런 걸 생각할 수 없었다고 했고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꿈을 그리는 수업이 있었다. 꿈이 뭔지 몰랐던 나는 그 수업이 당황스러웠다. 어려워하는 내게 선생님은 동생이 많으니까 보모가 어떠냐고 하셨고, 보모라는 말이 뭔지도 모른 채 장래희망에 보모라고 썼다. 조금 더 머리가 큰 뒤에는 요리사였고, 화가였고 소설가였다.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주체적으로 성우라는 꿈을 선택했다.


내가 주체적으로 꿈을 선택한 이후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나도 힘든 육아를 다섯 번이나 하고 그것의 보상을 내게 바란다고 내가 느끼기 시작하자 나는 도망치고, 거부하고 내게 당연하게 요구되는 것들을 뿌리쳤다. 아직 15살도 되지 않은 내게 어른이 됨을 바라고 이제 19살이 되어 꿈을 포기하라고 하는 과정들이 평생의 상처로 남을거라는 것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최소한 1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면 많이 보는, 마지막 통화기록이 2년 전이라고 나타나는 화면을 마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련의 사건들만 봐도 느껴지는 내 육아 난이도를 감당한 그들은 존경한다.


그래도

이불이 가득 찬 장롱을 아지트로 만들고, 이불과 상자로 기지를 만들던 나는 아직도 모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찾아다닌다.

내 키보다 큰 서랍장의 가장 윗 서랍에 들어가겠다고 낑낑대다 떨어져 울던 나는 아직도 퇴근길에 낑낑대던 하루를 돌아보며 운다.

체리를 본 적도 없으면서 벚나무에 올라가 버찌를 체리라도 우기던 나는 아직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다고 우기다가 손톱이 깨진다.


평범하게 사는 건 너무 힘들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지 않아서 내가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아직도 33살 딸의 생일을 헷갈려하는 부모님한테 상처받지 않을 용기가 채워진다면, 오늘은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아마 쉽게 채워질 용기는 아닐 것이다.


근데 나 진짜 아직 나무 탈 수 있다고!

이전 06화소진된 마음과 고갈된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