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애KAAE Mar 20. 2023

전문계 나온 사람은 개발자 못하지 않나요?

정보처리과에서 컴퓨터공학과로 가기까지.

  우리는 실업계라고 불렀다. 그땐 공식 명칭이 전문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다들 실업계라고 불러서 그렇게 불렀다.


  나는 여고의 일반고등학교 안에 있는 전문계를 나왔다. '정보처리과'가 우리 과 이름이었다. 일반계애들한테는 '문과', '이과'로 나뉘듯이 우리는 정보처리과라고 했다.

처음에 정보처리과를 간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문과를 가고 싶진 않았는 데, 전문계를 가면 포토샵을 배운다고 했다. 나는 이미 초등학생 때 포토샵으로 이것저것 끄적이고 했던 때라 그게 너무 재밌어 보여서 그냥 갔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전문계 가는 거 아니야?


  전문계 간다고 했을 때 선생님들도 별 얘기 안 하셨다. 내 성적이 문과에 갔다가는 뒤에서 깔아주는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계는 공부 못 하는 애들이나 가는 거 아니냐는 얘길 정말 많이 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전문계에서도 선생님들한테 나름 예쁨 받는 존재였다. 이미 포토샵을 하고, HTML을 찍먹해온 상태였으며, 컴퓨터를 자신들보다 잘 만졌고 거기다 눈치가 좋았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내가 당연히 대학에 가거나 컴퓨터 쪽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대는 집안 사정으로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으로 전향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쌓였다. 어떻게든 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하고 2년이 지나고 수능을 쳤다. 일하면서 공부한지라, 최저에 겨우 맞춰서 지방대를 갔지만 진학한 과는 컴퓨터공학과가 아니라 미디어콘텐츠학과였다. 수리영역 치는 게 너무 두려웠는 지라, 그냥 안 쳤다.

  수능을 보면서 생각했다. 전문계 애들은 1학년때만 일반계 애들처럼 배우고 나머지는 전공을 하는 데, 당연히 수능을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전문계는 컴공 어떻게 가지?


  결론부터 말하면 세 가지가 있다.

1. 수능 쳐서 간다.

  가장 심플한 방법. 자신이 없다면 포기하거나 가능하다면 최저를 맞출 수 있게 노력해 보는 것도 좋다. 제일 덜 귀찮은 방법이다.


2. 전문계 전형, 특성화고 전형으로 컴공을 지원할 수 있는 곳을 간다.

  조금 귀찮다. 가고 싶은 학교를 추린 다음에 특성화고 전형으로 어떤과를 받아주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단계에선 나의 고등학교 전공과 매치해서 연관성이 있다고 대학에서 판단하는 과만 지원가능 하다. 대체로 정보처리과는 경영학과를 많이 받는다.

  준비물은 성적과 여차하면 수능 최저. 조건을 잘 체크해 보면 수능이 필요 없기도 했다. (근 10년 전 얘기라 잘 확인해 보길 추천한다.)


3. 다른 과로 입학해서 전과한다.

  내가 시도했던 방법이다. 나는 우연한 계기로 전과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전과를 준비했다. 그리고 미디어콘텐츠학과 학상으로서 대학교 1년을 대충 다녔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을 4번 찾아간 끝에 전과에 성공했다.

  전과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 적당한 성적

  최저 3.0 ~ 3.5, 학교마다 다르다. 나는 3.68로 안정적인 점수인 상태였다.

- 교수님을 몇 번이고 찾아갈 의지.

  물론 학과가 전출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 경우 전과를 못할 수 있다. 이건 학교 공지사항에 매 학기 올라오는 내용이니까 참고.

  전과하면서 교수님이 가장 강조한 얘기는 ‘이과도 아닌 애가 전과하면 애들 성적밖에 안 깔아준다.’였다. 내경우에선 교수님이 착각하신 게, 면담한 지도교수님 수업 말고는 A+받은 게 없어서 이미 그 시점에도 깔아주는 사람이었다. 똑같은 얘기를 듣게 된다면 해보지도 않았는 데 어떻게 아냐고 반박해라.


전과 후에는?


  전과하고 나서는 바빴다. 못 들은 1학년 수업을 뒤쫓아가야 했고 동시에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만들기에 집중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전문계고 실업계며 컴공을 준비 중이라면 명심하길. 수학을 잘 못 해도 개발은 가능하지만 타고난 이과애들을 뛰어넘을 순 없다. 그들을 서류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실무경험 또는 그에 준하는 프로젝트 경력이다.

  전과생에, 전문계 출신이지만 올 A+에서 하나 모자란 점수도 받아봤고, 교수님들의 주목도 받아보고 랩실에서 랩실운영도 해봤다. 전과했다고 늦은 거 아니고, 빨리 쫓아가면 된다.


정리하자면…


  전문계, 특성화고에서 미분 적분을 배우진 않지만 프러그래밍 실무, 컴퓨터그래픽 같은 다양한 맛보기 공부를 먼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당신들의 무기가 되길.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과가 아니라고 개발 못하는 거 절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