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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Dec 30. 2023

인생이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잔인했던 2022년 12월 그리고 1년후

23년의 마지막 날이 딱 이틀 남았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가 되돌아보니 정말 많이 울었고, 그만큼 많이 웃기도 했던 한해였다. 작년 12월말 회식에 갔다오는 길이었다. 동생에게서 아빠가 아파서 응급실에 모시고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토를 계속하고 어지럽다길래 단순한 장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사해보니 뇌경색이 진행되었다고 했고, 골든 타임을 넘기지 않아서 현재 특별히 시술이나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아빠는 지속적인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하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1인실에 혼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인실, 뇌경색, 어지러움, 3콤보는 낙상이 일어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할수만 있다면 내가 간병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었고 특히 둘째는 껌딱지라 엄마가 안보인다면 불안해 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간병인이라도 써야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빠는 괜찮다고 하셨다.





결국 내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고 낙상후 의식저하와 뇌부종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응급수술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인공 호흡기, 수많은 배액관을 달게 되었다. 그 때는 뇌압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저체온요법과 뇌부종이 진행되지 않도록 일부러 재우는 약물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아빠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수술 후 중추 신경계 감염, 치아가 부러졌다. 너무 그 상황이 눈에 그려져서 (원내 감염과 치아가 부러진 점) 속상했지만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언제 아빠가 회복될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 장애를 입고 살아갈지, 아니면 돌아가실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아빠의 흔적, 이를 테면 반찬통, 아이들 간식, 아이들에게 사주신 옷과 신발을 보며 자주 울었다.





하필 내가 일했던 곳이 병원이라서 환자들을 보면서 우리 아빠도 휠체어로 생활하실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다. 일하면서도 아빠 생각이 나서 울고, 차에서도 울고, 집에서도 울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 버튼이 눌러졌다. 그 와중에 남편과 관계 개선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감정이 제대로 정리, 안정되기도 전에 아빠의 의식불명... 어쩌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그 때 느낀 감정은 감정과 마음의 밑바닥이 있다면 그 벼랑끝 같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어났지? 에서부터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여기저기서 흠씬 두들겨맞은 느낌이었다. <김간호사의 뇌경색 간병일지> 에 세밀한 감정선,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가는지는 기록해놓았으니 궁금한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20221228






아무튼 그렇게 잔인한 2023년 상반기가 지나가고 기적처럼 아빠는 회복했다. 지금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불안정하지만 보행도 가능하고 화장실도 혼자 가신다. 놀랍게도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되어 10월에 부부상담을 종료했다. 가끔 우리 사이에 갈등이 있거나 관계가 악화될 것 같을 때 가는 정도로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TJ스럽게 올해 있었던 일을 정리해보았는데 이벤트가 크게 4~5가지 정도 있었다. 아빠가 한참 급성기 치료중일 때 우리는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했으며 세입자를 2명 구하고 1명의 세입자를 내보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거의 날짜가 맞물려있어서 가장 바빴던 2~4월이었다. 사전점검부터 인테리어, 세입자 구하기, 구세입자 보증금 반환, 담보대출을 받기까지 정리해야 했던 그동안의 대출 등등으로 수능 볼 때보다 더 몰입해서 집중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투자자 선배님을 만나게 되어 그분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당장 하루 한 달이 시급했던 나는 그분의 조언을 밑바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과 운이 좋았는지 한참 전세를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던 올 3월 세입자 2명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이 정신 없었던 3개월, 초보 임대인으로 역전세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어서와, 집주인은 처음이지?>에 기록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D231155820?LINK=NVE



밀리의 서재, 알라딘에서도 서비스 중이다.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29118




올 하반기에는 남편의 이직, 둘째의 어린이집 폐원으로 두 남자의 직장과 어린이집을 모두 옮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매달 나가는 대출금은 같았기에 내 월급만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았고 남편이 이직하기까지 나는 남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돈걱정은 하지 않고 편하게 이직을 준비했으면 했다. 그래서 신용대출을 받았고 이것은 남편이 이직하기 전까지 경제적 쿠션이 되어주었다. 그 와중에 적금을 시작했다. 남편에게 자유여행을 보내주었고 둘째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다같이 가족여행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좋아했고 남편과 나도 정말 오랜만에 둘이 쉬는 시간이 맞아서 간 여행이었다. 이 시간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남편이 언젠가는 영원히 퇴사하는 날이 올텐데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라는 마음으로 그 일상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했다. <퇴사한 남편과 살아가는 법>은 그 일상을 브런치북으로 묶은 책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lifegoeson2023










© dankapeter, 출처 Unsplash





2023년을 돌아보면 너무 아팠고, 힘들었고 슬펐지만 힘들 때도 기쁠 때도 그 찰나의 감정과 기억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렇게 쓰다보니 200개의 글을 발행하게 됐다. 브런치를 시작한게 6월에서 7월초였다. 13권의 브런치북을 출간했고, 1권의 전자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책은 많이 읽지 못했지만 왠지 2023년은 읽기보다는 쓰는 이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쓰다보니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 때 느낀 찰나의 감정과 마음이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또 어쩌면 부끄러울 수 있는 부분, 나에게는 너무 힘들었던 기억을 되새기는 일이었지만 내가 쓴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던가 개인적으로 메일을 주신 분들이 있었다. (개인적인 메일 주신 분들에게는 다 답장해드렸다.) 그 분들의 메일을 읽으며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구나. 다들 아프고 상처받으면서도 그 삶을 지키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친구 부모님의 수술 소식을 들으며 이제 우리 나이면 부모님이 아플 수도 있는 나이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다만 나에게는 그 일이 조금 빨리 찾아온 것일 뿐이며, 남편과의 관계 또한, 더 감정이 악화되고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남들보다 조금 빨리 알게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커다란 이벤트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을 때 속으로 ' 하나님. 나에게 도대체 왜 이러세요?' 라는 말이 터져나왔으나 다윗왕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리고 성경에 나온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단 한 사람도 고난 없이, 과정 없이 왕위에 오른다거나 선지자가 된다거나 국무총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에 하나 그렇게 그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그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올해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상에 더 겸손해졌고 사람들에게 더 겸손해졌다. 또, 마음의 모난 것들이 동그스름해졌다. 내 생각대로, 계획대로 인생을 이끌 수 있을거란 생각도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삶은 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과 마음을 굴러서(?) 시간과 돈을 쓰며 배운 1년이었다. 매일 눈물 짓던 날들, 불안함에 잠도 자지 못할 때도 있었다. 전부다 좋지는 않았지만 전부 좋지 않았기에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평탄하기만 한 삶이었다면 현재 평온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도, 부모님이 건강하다는 것, 남편이 직장을 다닌다는 것,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다닌다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직도 철이 들어가는 중이다.





인생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너무 힘들고 속상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앞으로도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다고. 죽을 것만 같은 그 시간도 지나가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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