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나를 바라보는 시간
메모하는 습관은 꽤 오래되었다.
메모 앱에 담긴 순서를 ‘생성일 오래된 순’으로 거꾸로 보는 습관도 생겼다. ‘2011년 처음으로 메모 앱에 적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 궁금했다.
2012년 1월 2일 메모다.
“아침에 커피 한잔이라도 향긋한 냄새와 맛을 음미하면서 마신다.
습관처럼 마시지 말자. 아침 창가로 살며시 들어오는 겨울의 햇살에도 감동하자. 그냥 그르려니 하고 넘기지 말자. 이 겨울의 햇살도 사실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우주가 탄생한 138억 년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다. 만물에 대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 햇볕 에너지가 아닌가. 따스한 온기 속에 살아가는 이 순간에 감사하다. 행복한 시간이다.”
거실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쓴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12년 2월 29일, 메모치고는 꽤 길다.
1995년, 창업투자회사에서 투자본부장을 거쳐 대표직을 맡을 때이다. ‘성공을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라는 막연한 목표는 있었지만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릴 때였다.
“어느 날, 투자분석 팀장이 새로운 투자처가 있으니 직접 면담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왔다. 투자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에게 투자한다고?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한 랩 음악을 하는 LA에서 온 교포 청년들이었다. 호기심에 일단 한번 만나 보자고 하여 회사에서 만났다. 처음 보는 순간 머리카락 색깔이 요란하여 대화 내내 눈에 거슬렸다. 음반으로 들려주는 리듬 앤 블루스 창법의 앨범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투자를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 청년들이 화면에 나왔다. 2집 앨범이 대 히트를 친 것이다. 솔리드 그룹이었다.
그 후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여러 번 차지했다. 지금까지도 새로운 앨범을 내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니 나의 고정관념과 안목없음이 세상의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를 보는 판단 능력을 잃어버렸다.
아마 그들의 머리 색깔과 옷차림을 보는 순간 교포 2세들이 LA 한인타운 뒷골목에서 철없이 노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순간적으로 편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랩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었으리라. 내 판단이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편견으로 인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의 왜곡된 심리를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기업경영에서도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뒤늦게 후회한다. “라는 긴 메모다.
미주 한인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R&B 음악의 신호탄을 올린 그룹이었다.
지금부터 25년 전에 일어난 일을 갖고 8년 전에 끄집어내어 쓴 글을 지금 다시 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나의 ‘안목 없음’을 다시 생각한다. 이 감상도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른 생각도 곧 사라지고 없어진다. 기록한다는 것은 내 생각을 쓰는 것이고 그 생각은 곧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다. 쓰지 않으면 나의 생각과 함께 추억까지도 함께 사라진다.
결국 나의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글 쓰는 첫 번째 이유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시기는 2018년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간디의 자서전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는 실행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글을 써야 할 더 구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집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구석에 있는 <영월 엄씨 대동 족보>를 보면서 내 삶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조부모, 증조부모님과 조상들의 생몰 기록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부모님에 대한 일부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부모님이 그 시대에 구체적으로 무슨 고민을 하시고 어떤 순간에 소중한 행복을 느끼며 생을 사셨는지 알지 못한다. 나에게 남겨진 부친의 기록은 몇 장의 사진과 '족보'밖에 없다. 그 두꺼운 여러 권의 『영월 엄씨 대동 족보』에서 시조와 조선시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 충신의 역사는 알 수 있지만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각을 단 한 줄도 찾을 수 없다. 나는 조상이 무슨 벼슬을 가졌는가 보다는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사셨을지가 더 궁금하다.
그래서 나의 기억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기억의 조각을 모아 글을 쓰고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딸들에게 남기고 싶었다. 딸들에게 아빠의 기억과 경험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나처럼 살라고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고 싶을 따름이다. 너희들과 함께 한 나의 삶에 즐겁고 슬펐던 시간을 잡아서 그 순간을 기록으로 묶어 딸에게 전하고 싶었다.
글 쓰는 두 번째 이유다.
고인이 된 박완서의 단편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의 ‘마른 꽃’이라는 단편에서 “해가 바뀌니 환갑 해였다. 낳은 해의 육갑이 한 바퀴를 돌아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육갑을 한다’는 게 결코 칭찬이 아닐 텐데 너도나도 내 앞에서 육갑을 하려 들었다.”
그렇다.
내 삶의 한 부분의 매듭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다.
육십갑자를 가까이에 둔 시점이었다. 육갑 떨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즈음 생의 중간에서 한번 정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자’라는 결심을 했다.
글 쓰기를 시작한 세 번째 이유다.
마침 학교에서 안식년을 받아서 여유가 생겼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쓰이지 않았다. 무엇부터 쓸까?
고민하다가 가장 오래된 시간부터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5~6살 때의 기억이 났다. 몸빼바지를 입고 찍은 사진이 있어 그 당시 모습이 떠 올랐다. 정월 대보름달을 보고 두 손 모아 기도한 기억이다.
"기억이 떠 오른다."라는 단 한 문장의 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곤 50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기억의 샘에서 처음엔 천천히,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면서 어느 순간 봇물이 터져 나오듯 글이 쏟아졌다. 한번 터져 나온 글은 거침없이 자판 위에서 춤을 췄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쓰기 시작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빨랐다. 가끔 글이 막히거나 아픈 기억에 우울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때 밖으로 나가 걷는다. 한참을 걸으면 다시 생각이 정리되었다. 4개월을 그렇게 썼다.
쓰고 난 후에 보니 엉망인 글도 많았지만 글쓰기의 즐거움을 처음 알았다.
지금 브런치 글의 일부는 그때 쓴 글감을 가져와 쓰고 있다.
브런치 글쓰기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번 글 <25년 다닌 헬스클럽을 탈퇴한 이유>를 발행한 후 사흘 만에 20만 조회 수가 넘었다. 독자들의 피드백에 한 번 더 놀랐다. 독자들의 취향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진지하게 쓴 글은 오히려 반응이 별로 없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생각보다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인생에 별 관심이 없다. 남의 삶보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나 ‘본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가 있는 정보’를 얻기를 원한다.
미국의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배우면 함께 공감하고, 가지면 나누어 주라”라고 강조한 말이 생각난다.
함께 공감하고 나누고 싶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내 삶의 과정을 글로 쓰면 트럭 한 대분으로 모자란다고..”
맞는 말이다.
트럭 한 대분의 글도 단 한 줄의 글에서 시작한다.
나의 스토리가 "기억이 떠 오른다"라는 한 문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만보 걷기가 첫 한 걸음에서 출발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