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딸들

by 엄재균

아침에 카톡으로 브런치가 도착되었다.

“나는 아부지로부터 수십억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아침부터 웬 유산 타령을 하는가 생각하면서 넘어가려다 ‘도대체 어떤 아부지가 딸에게 그렇게 많이 줄 수 있지?’라는 호기심과 질투심이 섞인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 사람이다.” 라는 글귀에 잠깐 멈춘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이 배어 있었고, 딸 또한 그 사랑으로 수십억 유산보다 더 귀한 ‘자존감’을 받았다는 얘기다. 읽은 후 마음이 찡하다. 나는 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어질까?


딸들에게 내가 물려줄 유산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은 무엇인가’

다시 뒤돌아 본다.


2002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날,

학교로 가는 차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큰 형님한테서 온 전화다. 잠깐 뜸을 들인 후에 얘기를 꺼낸다. 예전에 기업을 경영할 때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때 아버지가 연대보증인에 날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요..?"

계속 얘기를 들어보니 심각한 일이다.


당시 기업을 운영하는 큰형께서 사업자금 대출을 받을 때, 은행에서 연대 보증인을 요구해서 아버지 도장이 함께 찍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자금이 급하니 다른 일로 회사 재무팀에 맡긴 아버지의 인감도장으로 아버지의 동의도 없이 담당 임원이 연대 보증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당시 은행에서는 꼭 연대 보증인을 요구했다.


보증 금액을 물으니 한국 자산관리공사에 서류가 있다고 한다. 다음 날 삼성동 무역센터에 있는 자산관리공사로 직접 갔다. 연대 보증서 서류를 하나씩 확인했다. 자필 사인은 없었으나 도장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연대보증 금액을 모두 더해 보니 800억 원이 조금 넘는다. 8억 도 아니고 80억 도 아닌..


믿을 수가 없었다. 공사 직원이 채무액은 상속포기를 하지 않았으면 고스란히 상속이 된다고 한다. 채무도 재산과 함께 상속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상속 포기할 시기도 이미 놓쳤다. 상속인이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 삶을 받쳐주는 바닥이 갑자기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꽉 막히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로서는 방법이 없다. 800억 원? 형제들이 부채를 나눈다 해도 도저히 내 평생을 모아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다. '이민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퍼뜩 떠올랐다.


그날 따라 영동대로의 인도를 건너는데 바람까지 차갑고 매서웠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다음 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4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아버지가 진 보증 채무를 아들이 갚으라니? 그것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채무를? 부당하고 억울했다. 상속법을 찾았다.


당시 상속법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를 하거나 아니면 한정승인을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한정 승인은 상속채무가 상속재산보다 많은 경우에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 채무를 변제하는 방법이다. 단, 한정승인도 상속개시일 즉 사망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벌써 4년이 넘었으니 법의 구제를 받을 길도 없었다. 쉽게 얘기하면 사망을 인지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든 한정승인이든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문도 검색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회사 부도가 엄청 많았다. 나와 비슷하게 억울한 경우가 꽤 많았다. 그때, 신문 한 면에 나의 시선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억울하게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누군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했다.


상속법에 문제가 있으니 법 개정을 해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신청을 하여 1998년 8월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왔다. 그 후 2002년 1월 민법 개정을 통해 '특별 한정승인' 제도를 만들었다.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후 3개월이 아니라 "상속채무가 상속재산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안 후 3개월 내에 한정상속 승인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사항을 추가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구나.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사항은 2002년에 개정된 '상속에 관한 민법'이 1998년의 시점까지 소급이 가능한 것인가? 변호사 친구에게 확인했다. 친구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1998년에 났기 때문에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이었고 실제로 법적 승인절차를 거쳐야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상속재산을 확인하니 작은 단층 상가건물과 부속 대지와 고향 선산의 논밭 정도다.


소급적용은 1998년 5월 27일 기준으로 하여 그 이후부터 소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 1998년 8월 10일이니 소급 적용할 수 있었다. 결국 변호사 친구의 도움으로 상속 한정승인 절차를 밟았다.


2002년 3월, 서울 가정법원으로부터 한정승인 신고를 수리한다는 심판을 받았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본인의 억울함을 헌법재판소를 통해 이의를 제기한 '한 시민'이 너무 고마왔다. 법과 제도는 일반 상식을 기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억울하게 피해를 입을 때 그나마 법적 구제를 받을 체제가 갖추어져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태어나면서 집안 살림이 서서히 나아졌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하시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집안의 복을 안고 태어났다"는 말씀도 하셨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 그 말씀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복을 갖고 태어났는데 잘 못될 수는 없을 거야'라고 늘 나에게 다짐했다.


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어렵게 생활하시다 결국 몸이 상해서 돌아오셨다. 그 후로 다시 만주까지 넘어가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면서 '궁핍함'을 체득하시고는 어려운 사람의 '막막함'도 함께 느끼셨다고 하셨다. 가끔 만주와 전쟁 피난시절의 얘기를 형님께 하실 때 등 뒤로 들은 기억이 난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서 ‘아버지의 팍팍했던 만주 생활’을 더 또렷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태백산맥>에서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육이오 전쟁 피난시절의 위태롭고 안타까운 ‘아버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걸인이 많았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걸인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집을 찾아다닌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럴 때, 아버지께서는 옆에 있던 엄마와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적선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먹다 남은 밥이 아니라 새 밥과 찬을 주라고 하셨다. 남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측은지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만주 벌판에서 ‘궁핍함’을 체험하셨기에 어려운 사람의 ‘막막한’ 사정을 잘 이해하셨으리라 짐작된다.


당시에는 새해가 들면 문 앞에 복조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쌀에 섞인 잔돌을 고르기 위한 것인데 새벽에 누군가 던져 놓고 갔다. 오후가 되면 수금하러 어린 청소년들이 초인종을 누른다. 어떤 경우는 성가실 정도로 자주 문을 두드린다. 그럴 때에도 아버지는 두 말하시지 않고 복조리 값을 주시고는 고생이 많다고 덤으로 더 주신다.


그 장면이 아직도 내 눈에 밟힌다.


나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크게 야단을 맞은 기억도 없다. 그냥 몸으로 ‘당신의 삶’을 보여주셨다. 나 역시 아버지로부터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따라 무척 보고 싶다. 우리 세대는 부모로부터 사랑한다는 얘기를 잘 듣지 못했다. 그때는 삶이 고달팠던 시간이었다.


호숫가를 하염없이 걸으면서 생각한다.

그래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의 부모님과 아내와 딸들을 사랑한다고. 아버지 생전에 나의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이 사진을 볼 때면 늘 SG워너비의 김진호 노래 <가족사진> 가사가 떠오른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에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당신의 그을린 그 시간을 내가 모아서 웃음꽃 피우기도 전에 이미 당신은 나의 가족 곁을 떠나 버리셨다. 아니, 그럴 시간을 내가 무심하게 놓친 것이다.


나는 딸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라고 나에게 묻는다.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그 아버지의 마음만은 나의 딸들에게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딸들,

너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 가족은 ‘행복이라는 선물’을 넘치도록 받았다.

이제 곧 각자 독립하여 새로운 삶을 꾸려갈 때 할아버지의 측은지심과 너희를 많이 많~이 사랑한 아빠로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

사진 - guille-pozzi-uDVHOjVg86 M-unsplash

이전 08화50년 만의 피아노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