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루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지속된다.
비대면 강의도 계속된다.
개인이나 나라가 힘들 때는 뒤를 돌아본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하고 반추한다.
1996년 겨울, IMF 위기가 올 즈음,
2년간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에서 쫓겨 나오다시피 했다.
한참 후에야 내가 뭔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뭘 위해 그렇게 옆도 보지 않고 달렸을까. 대학 졸업 후, 20대 중반에서야 군 통합병원에서 삶의 목표를 어설프게나마 세웠다. 몸이 아프니 그동안 죽어있던 생각이 살아났다.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다소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사람들은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두 비슷한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남보다 더 성공하고 행복하기 위해 목표를 달성하려고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나 역시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유학을 준비하고 가정을 꾸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아 돌아왔다.
귀국하여 대기업에 선임연구원으로 취업하면서 다시 경쟁하면서 미래의 ‘성공과 행복한 삶’을 위해 모든 걸 저당 잡고는 달렸다. 남보다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해 직장을 옮기고 앞만 보고 뛰었다.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다.
행복은 잠시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창투사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기사가 달린 차의 뒷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항상 뭔가에 쫓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이었다. 퇴근을 해도 업무는 끝나지 않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나 자신을 소진했다. 능력만 있으면 그리고 그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만 있으면 삶의 보람을 성취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한 ‘성공과 행복’을 위해 나 스스로 나를 착취한 시간이었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한지를 몰랐다. 언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몰랐다. 마치 양 눈의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면서 나를 몰아쳤다.
그렇게 성취 욕망과 불안 속에서 30대를 보내던 어느 날, 경제 위기인 IMF 환란의 전주곡이 서서히 들렸다. 기업들이 부도가 나기 시작했다. 위기의 쓰나미가 점점 더 내가 근무하는 회사까지 밀려왔다. 새벽에 느닷없이 잠에서 깨면 등에서 식은땀이 맺혔다. 그리고는 잠을 더 이상 잘 수가 없어 불면의 날을 보냈다.
얼마 되지 않아서 결국 모기업이 부도를 냈다.
상호지급보증이 되어 있는 계열사인 창업투자회사도 자동적으로 넘어갔다. 며칠 후, 법정관리인이 나를 불러 대표이사 자리를 내어 놓으라고 했다. 그 날로 나는 백수가 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쫓겨 나왔다.
성공해서 ‘행복한 삶’을 누리겠다는 목표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며칠을 알코올의 힘으로 지냈다. 끝임 없이 나를 채찍질하여 성공의 열매를 즐기며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가족과 몇몇 친구를 제외한 주위 모든 사람이 떠났다. 영혼까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쪼들렸던 시간은 넘쳐났다.
당시 직장을 잃은 많은 백수들은 산에 많이 갔는데 난 그것도 싫었다.
그동안 너무나 바빠서 멈출 수 없었던 삶을 돌이켜 보았다. 쉴 틈이 없이 바빴던 나의 삶 속에서 ‘내’가 없었다. 매일 일하기 위해 집을 나섰고 일하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열심히 살았던 내 삶에서 ‘내’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소외되었다. 남에게 버젓하게 보이기 위한 삶이었다.
삶에 대한 질문이 없으면 좀비와 같이 살 수밖에 없다. 20대 중반에 한번 질문을 던진 후 성과를 얻고자 했는데 결국은 좀비처럼 살았다. 이제 시간이 남아 도니 다시 질문이 떠올랐다. 스스로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얼마나 오랜만에 한 질문인지 모른다.
‘내가 추구한 성공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걸까,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질문이 끝도 없이 나왔다
그동안 나는 사회적 성공을 바라보면서 멀리 아스라이 있는 무지개처럼 가까이 가면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 성공과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 타인의 욕망을 투사하여 그것이 나의 욕망인 줄 착각하면서 살아왔다. 나 스스로 그 욕망을 똑바로 바라보고 통제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욕망한 것은 사회가 요구한 욕망이 나에게 투사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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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가장 막막했던 질문이 ‘인간답게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왜 세상에 왔는지도 모르고 이 곳에 도착했다.
작년에 텔레비전을 통해 본 국회 발 코미디 한 편이 떠오른다.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위원장이 한 행동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국회의원끼리 호칭을 부를 때 꼭 ‘존경하는 ***국회의원님’이라고 한다. 심지어 국무위원과 증인들도 이러한 존칭을 쓰고 있는데 아마 밉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존칭을 쓰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렇게 ‘서로 존경하는 국회위원’들이 염치없는 짓을 한다.
법사위원회에서 판사 출신의 위원장이 회의를 거칠게 마무리하다가 혼잣말로 내뱉는다. “웃기고 있네, 병신 같은 게~”라는 시정잡배들이나 사용할 천박한 욕설을.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본심에서 나온 말인데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잡아떼기까지 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영화 ‘내 사랑’의 장애인 'Maud'가 생각났다. 장애를 가지게 되어도 끊임없이 끈기와 열정을 가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 감히 장애인을 비하하는지 내가 오히려 부끄럽다.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부하직원이나 약자 혹은 소수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우리는 거리에서 장애인을 거의 볼 수 없다. 장애인이 없어서 거리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거리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교통수단, 도심의 시설과 차가운 사회적 시선 때문에 나오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가 어려운 나라이다.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잠시 옆길로 샜다.
회사에서 실직당한 후, 나는 고통 속에 지내면서 나도 모르게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이지’ 등의 질문들이 떠올랐다. 질문은 위대할 수 있지만 삶의 현장은 실존적이고 구체적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주위를 정리해야 한다.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걸었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흘러간다.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속도 속에서 천천히 걷는다는 것이 생뚱맞을 수도 있다. 세상 속도에 맞추어 자전거, 자동차, 기차를 타고 쌩쌩~ 달릴 수도 있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사소한 기쁨을 놓친다. 느림의 미학이 있다. 길 가에 핀 꽃, 풀잎 향기, 다가오는 강아지의 모습, 그리고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많은 생각들. 집에서 누워서 혹은 앉아서 웅크리면서는 긍정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두 근심, 걱정, 불안 등의 부정적이고 잡생각이다. 그러나 걸으면서 항상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생각만 난다.
그래서 더욱 매일 걸었다.
걸으면서 저절로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을 지켜보는 명상을 했다. 예전에 명상 훈련을 받은 덕에 걸으면서 명상을 했다. 머릿속의 온갖 불순물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의 경치를 즐기면서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나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구나.
이제는 잠시 내려놓고 쉬어 가렴..
내가 나를 보듬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주위의 모든 생명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고 생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라는 존재가 수 억만년 생명의 역사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까지도. 매일 걷기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앉아서 혹은 누워서 머리로 고민하는 시간보다 몸을 움직이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훨씬 긍정적이고 충만하다.
걷는 것이 백수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엉클어진 내적 고민과 갈등이 하나씩 정리가 되었다.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마음이 치유가 되었다.
걷기를 시작하면 발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중력의 힘을 거스르는 기운이 대둔근과 척추의 기립근을 타고 오면서 뻗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심장과 폐로부터 느껴지는 혈액의 박동 소리와 거친 숨결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역시 인간은 몸을 움직여야 살 수 있다. 그리고 몸이 아프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통을 당해보아야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주 사소하지만 삶의 활력을 주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약 3년 간 거의 매일 만보를 걸었다. 지금은 굳이 만보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걷기를 조절한다.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걷기를 시작하면 서다. 걸으면 좋은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 그 생각들을 더 이상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생각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고 있노라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샘솟는다. 호기심이 많아졌다.
책을 읽었다. 소설, 수필에서 현대 뇌 과학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걸으면서 머리가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아득한 어린 시절 이후로 이렇게 호기심이 많이 생긴 적이 없었다. 뇌에서 생각이 축적되면서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어 졌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루틴이 일상이 되었다.
걷고 메모하고 읽고 쓰고 다시 걷는다.
오늘도 아침에 공원을 산책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여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서 흐르는 탄천의 물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온갖 종류의 음색을 가진 새소리까지 들린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의 도입부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 다들 어렵고 힘든 시간을 버텨 내고 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서 함께 걷자.
걸으면 삶의 길이 보인다.
Photo by Jennifer Latuperisa-Andrese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