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피아노 연습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하는 그날까지

by 엄재균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리처드 클레이드만의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 피아노 곡을 들었다.


아주 오래전 한동안 열심히 연습했던 곡이다.

이제는 다 까먹었지만 말이다.

다시 검색을 하다가 클레이드만의 “가을의 속삭임” 피아노곡도 즐겁게 들었다. 신촌 거리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어 플레이를 눌렀다. 뒷모습만 보아도 나이가 지긋이 든 젊은 노인이다. “가을의 속삭임”을 치는 손가락이 예사롭지가 않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곡이 끝나고 다른 곡을 하나 더 치고는 영상은 끝이 났다.


댓글을 읽으니 모두 “와, 할아버지 대단해요..!”라는 감동 일색이다.


한 댓글에서는 “이 분은 자기 친구 아빠인데 치과의사예요”라는 글도 있다. 역시 치과의사 손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물론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화려하고 부드럽지는 않지만 정확하게 건반을 두드리면서 안정감이 있는 연주였다. 나 역시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부럽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도 어릴 때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선생이 음악을 전공했다.


학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악기 하나씩 하도록 하여 합주부를 만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집에 피아노를 가진 집이 드물었다. 담임선생은 가정형편에 따라 피리, 트라이앵글. 템블린과 캐스터네츠라 불리는 ‘짝짝이’ 등으로 모든 학생에게 악기를 지정해 주었다. 난 첼로를 선택했다. 아니다. 이것도 담임선생이 선택한 것 같다. 집안의 형편을 살피면서 각자에게 한 가지 악기를 다루도록 하고 매주 연습도 시켰다.


첼로는 방과 후 학교에 남아서 첼리스트에게 개인 교습까지 받았다. 어머니는 집에 피아노도 있으니 이왕 배운 김에 피아노도 함께 배우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능력과 재능을 과잉 평가한 모양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기부여가 없는 공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방과 후에 첼리스트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곱슬머리의 그 첼리스트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찌 되었건 재미도 없는 첼로와 피아노를 번갈아 가면서 학교에 남아서 배우려니 고역이었다. 남들은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데 나와 다른 한 친구와 함께 ‘죽을상’을 하면서 첼로를 배웠다.


담임선생의 열정으로 우리 학반 모두가 학교 행사에서 합주 행진도 하고 외부 공연도 하였다. 운동장을 돌면서 하는 합주는 나름 재미있었다. 대구 계성고등학교 강당에서 연주회가 있었다. 첼로보다는 처음 입는 흰 와이셔츠와 검은색 ‘나비넥타이’가 멋있어 신이 났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다. ‘헝가리 무곡 제5번’을 연주한 기억이 난다. 그 어릴 때 연습한 곡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곡을 흥얼거릴 정도다.


연주를 잘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나비넥타이’를 맨 사진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첼로와 피아노와 처음 접하고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다시는 연습할 기회가 없었다. 음악 시간에는 그저 노래 몇 곡 부르고 음악의 아버지가 누구고 어머니가 누군지 쓸데없는 정보만 머리에 집어넣는 걸로 끝이었다. 그리고는 피아노와 첼로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세월이 흘러 약 7~8년 전이었을까?


고등학교 동창으로 이루어진 계모임에서 누군가 보컬 밴드를 결정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당시에 친구들끼리 밴드를 결성하여 카페를 빌려 연주회를 여는 게 유행처럼 되었다. 각자 자신이 맡을 악기를 정했다. 나는 그나마 피아노를 조금은 배웠기에 키보드를 담당하기로 하고 집 앞에 있는 개인교습 학원에서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피아노 강사는 초고도 비만이어서 옆에서 가르쳐주는 동안 숨을 얼마나 힘들게 몰아 쉬는지 내까지 힘들었다. 한두 달이 지났을까? 기초 연습이 끝나고 이제 팝송 중에 ‘마이웨이’를 골라 본격적으로 배우려는데 강사가 자기는 광진구로 옮긴다고 한다. 거기서 배우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한다. 그 멀리까지 가서 ‘씩씩’ 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에 바쁘다는 이유로 허지 부지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어느 날, 신촌 거리에서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한 할아버지 - 아니 내 연배보다 높긴 하지만 아직 할배는 아닌 것 같은데 - 덕분에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난번 내가 쓴 글 “생의 마지막을 지금 생각하는 이유”가 떠올랐다. 마지막 순간에 후회할 것만 같은 목록 중에 ‘피아노를 끝까지 배우고 익혀 즐기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래,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시작하자’라고 결심했다.


어떻게 배울까 고민하다가 동네 가까운 곳에 피아노 학원이 있어 연락을 하니 성인을 위한 개인반이 있다고 한다. 일단 전화로 확인하고는 아내와 딸들에게 물었다. 모두 한동안 피아노를 연주한 경험이 있었다.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 피아노로 음대를 가려다가 중도 포기하고 사학과에 입학했다는 얘기도 기억난다.


아내가 묻는다.

“당신은 수영과 골프 등 모든 걸 혼자 배웠는데 굳이 학원에서 배울 필요가 있나”라고. 하긴 난 지금까지 모든 걸 혼자 배웠다. 그렇게 하니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 더 이상 향상하기 어려웠다. 피아노는 빠른 시간 내에 숙달하기 위해서는 고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요즘에는 “유튜브 강의와 좋은 교재가 많아서 혼자서 연습하는 게 충분하다는 것”을 아내가 다시 강조한다.


최근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밀폐된 공간에서 학습을 받기도 께름칙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으니 온라인 개인수업도 있고 유튜브에도 강의가 수두룩하다. 그중에 가장 나에게 맞는 수준과 강의인 "Julia and Eugene"를 찾아 구독을 했다.


그런데 집에 피아노가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배우던 피아노가 크면서 별로 사용하지도 않아 몇 해 전에 중고로 처분했기 때문이다. 다시 구입하기로 했다. 일반 피아노보다는 간편한 키보드형을 검색하니 쓸 만한 것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장비를 구입해야 했다. 악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내가 인터넷을 검색하고는 금천구의 가산디지털 단지로 함께 가서 직접 디지털 피아노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이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기만 하면 된다. 집에 돌아오니 큰딸이 제안한다. 자기가 사 드리겠다고 한다.


아빠가 큰 결심(?) 했는데 자기도 기여하고 싶다고 한다.

현재 대학에서 연구비를 받으면서 박사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딸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다? 나는 “됐다고, 말만 들어도 고마우니, 벌써 받은 것으로 하겠다.” 고 했다. 딸이 진지하게 두 번 더 얘기한다. 자기가 사 드리면 "아빠가 연습을 더 열심히 할 동기가 될 것"이라고 근거가 있는 이유까지 들면서 제안한다.


“그래 땡큐다.!”

난 못 이기는 척하면서 “열심히 연습 하꾸마“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딸이 “Family Band"를 만들자는 제안도 한다. ”자기는 리더 기타를 둘째는 예전에 배웠던 드럼을 하고 나는 키보드, 그리고 아내는 보컬(?)로 하면 어떠냐고” 한다. 아내는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올커니, 예전에 친구들과 못한 것을 아쉬워했는데 ‘가족 밴드’를 만들어 연주한다?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니 이틀 후 곧바로 배달이 왔다. 키보드형이라 조립도 간단하고 자리도 차지하지 않아 간편하다. 아내가 오랜만에 먼지가 쌓인 악보를 꺼내어 연주한다. 오랜만에 아내가 치는 피아노를 들으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해야지..’

교재를 구입하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고 연습을 했다. 역시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된 학습은 늘 재미있다. 물론 손가락이 내 마음대로 안 될 때도 많지만 조금씩 악보를 보면서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노래를 무리 없이 칠 수 있어 기뻤다. 배우는 과정이 즐겁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독일군 장교 앞에서 스필만이 연주한 쇼팽의 ‘녹턴’을 나는 언제쯤 연주할 수 있을까. 아니다 작은 목표를 세우자. 일단은..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하는 그 날까지..



Photo by Nazar Yakymenko on Unsplash

Photo by Tadas Mikucki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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