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학습의 시대에서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배우기'
딸이 어릴 때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길래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공원에 가서 딸은 자전거를 타고 나는 뒤에서 안장을 잡으면서 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속도가 날 때 내가 안장을 놓자마자 아이는 계속해서 넘어지면서 실패를 반복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반복하여도 원래 겁이 많아서 그런지 좀처럼 자전거를 통제하지를 못했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결국의 아이의 코에서 피가 터졌다.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했다. 조금 속도가 나자 겁이 났던지 아이가 묻는다.
“아빠 잡고 있지?”
“그럼~”
이 세상 모든 아빠들이 하는 거짓말을 하면서, 그 순간에 나는 이미 안장에서 손을 떼고 함께 뛰어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잡고 있는 척하면서. 얼마 있지 않아 아이는 계속 자전거를 잘 통제하였다. 어느 순간 내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면서 자전거 안장과 멀어지자 그제야 아이는 내가 손을 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이미 자전거는 잘 가고 있었고 자신은 그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았다.
그리고는 아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조금만 더 타고 가겠다고 한다. 벌써 주위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힘은 들었지만 내가 한 일이라고는 뒤에 살짝 도와주면서 ‘스스로’ 몸으로 터득하게 한 것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배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어릴 때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배운 기억은 없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처음 옹알이를 하고 뭔가를 말하려는 과정을 되돌아본다. 아이들에게 말을 배우라고 누가 강요한 적이 없다. 스스로 말을 익히고 학습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아왔다.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에서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이마이 무쓰미 교수는 저서 <배움이란 무엇인가>에서 모국어를 학습할 때 아이들은 ‘오로지 배우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로 말미암아 스스로 음률과 음소를 익히고 단어를 하나씩 배우기 시작한다고 한다.
저자는 모국어 학습과정을 연구하면서 태아에서부터 외부의 소리 즉, 엄마의 소리를 들으면서 모국어의 고유한 음률을 익히고 생후 2년간 꾸준히 ‘스스로’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 배우면서 모국어를 습득한 어린아이들이 어느 날 주체적인 학습능력을 서서히 잃게 된다.
어이없게도 공교육이 시작되면 서다.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아이러니컬하게도 스스로 배우는 능력과 끊임없이 샘솟는 질문에 대한 욕구를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습의 기본 요건은 ‘주체적이고 스스로 배우는 힘’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잘 짜인 교육 커리큘럼에 의해 아이들은 차츰 호기심을 잃어간다. 수동적인 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배우고자 하는 욕망은 불행하게도 학교를 통해 점점 삶 속에서 사라진다.
배움은 본인이 ‘스스로’ 배우고 몸으로 터득해야 한다. 그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배움의 과정과 그 즐거움을 안다. 나 역시 자전거를 배울 때 처음으로 내 혼자서 페달을 밟으면서 나가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수영을 배우면서 스스로 물살을 가르면서 나갈 때, 그 순간의 성취감이 아직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몸으로 배운 지식과 기술은 평생 잊지 않고 필요할 때 자동적으로 꺼내어 쓸 수가 있다.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을 포함한 뇌심부에 있는 대뇌기저핵과 시상, 소뇌 등에서 특화된 ‘자동화 회로’를 만들기 때문이다. 더 이상 뇌의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그 기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신경회로’를 저장된다. 따라서 그 기술을 수행할 때는 뇌의 각 부위에 축적된 기억과 절차들이 저장된 ‘자동화 신경회로’를 신속하게 끄집어내어 사용할 수 있다.
인지적 학습인 독서와 글쓰기도 꾸준히 훈련하면 ‘자동화 회로’가 생성된다. 특히 몸을 사용하는 수영, 골프, 자전거, 당구 등 모든 운동 종목이 이러한 뇌의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한번 익히면 평생토록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등 예술 활동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 몸으로 배운 지식은 오래간다.
학습을 하여 숙달되게 하려면 선생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이해한 후, 모방을 하면서 그것을 실제로 본인이 훈련하면서 뇌신경회로와 몸의 근육 세포들이 일체가 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새롭게 구축된 신경회로를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외국어 습득에서도 나타난다.
모든 학습의 숙달 과정이 동일하다.
운동을 배우는 과정을 살펴보자.
나는 수영을 혼자서 배웠다. 처음에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만 했다. 그리고 따라서 해 보았다. 뇌에서 모방을 담당하는 ‘거울 뉴런’ 덕분에 반복하여 연습하니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서 수영을 할 수 있게는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향상되지는 않았다. 혼자 배우는 한계였다.
세월이 흘러 수영을 다시 처음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다시 익히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유명강사들의 체계적인 강의를 보았다. 영법도 고치고 터닝과 배형의 스트로크를 혼자 배우면서 터득했다.
어릴 때 수영을 마스터한 딸과 함께 가끔 수영할 기회가 있으면 딸의 “원포인트’ 레슨을 받는다. 코피가 터지면서 자전거를 나에게 배웠던 딸이 이제는 나를 가르친다.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대를 잇는다.
차츰 수영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한 마음이 일어났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즐길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흔히들 수영, 골프 등 어떤 운동이던 어깨에 힘을 빼라고 강조한다.
맞다.
그러나 어떻게 힘을 빼는지는 직접 물을 먹어가면서 시행착오를 해야 알 수 있다. 몸이 물속에서 자
연스럽게 반응하는 단계가 온다. 함께 레인을 사용하는 사람이 묻는다. 자기는 ‘25미터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차는데, 나는 어떻게 열 바퀴 이상을 돌아도 편안하게 호흡하면서 수영할 수 있냐’고 묻는다. 몸에 힘을 빼라고 조언한다. 특히 어깨에 힘을 주지 말라고 한다. 몸의 균형과 리듬을 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내 말을 머리로는 이해는 하지만 몸으로 체득하지는 못하는 눈치다. 모든 운동의 학습 과정이 이와 같다. 스스로 몸으로 그 느낌을 터득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뇌의 ‘자동화 회로‘의 사례가 외국어 학습에서 잘 나타난다.
모국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만 외국어를 배우기는 너무 어려운 이유다. 모국어를 배우면서 쌓은 ‘모국어 전용 정보처리회로’가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무쓰미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일어와 동일하게 우리도 영어를 배우면서 ‘r'과 ’l'을 구분하기가 그토록 어려웠다. 그 이유는 이미 한글을 배울 때 필요 없는 음소는 더 이상 주위를 집중할 필요가 없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백지에서 그림을 그리면 자유롭게 그릴 수 있지만 일단 그림을 그린 후에 덧칠을 하는 작업이 더 어려운 이유와 동일하다. 모국어에서 배우고 익힌 음률, 음가, 음소, 억양, 단어 및 단어의 맥락이 외국어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토록 어렵게 느껴진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배움의 과정과 방법은 거의 동일하다.
운동, 음악, 미술 혹은 학문을 배우는 목적은 꾸준히 학습하고 숙달하면서 통찰력을 얻고 삶에서 ‘즐길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단계까지 도달하려면 부단한 연습을 통해 뇌에서 절차적 기억 회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운동과 예술분야라면 몸으로 체득하여 뇌세포와 몸의 운동 세포가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즐길 수 있는 단계까지 온다.
독서와 글쓰기도 그러하다. 매일 책을 읽고 메모하고 글을 쓴다. 어제보다 쪼끔이라도 더 나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어떤 배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침마다 약 20분간 스트레칭과 근력강화 운동을 하고 난 후 산책을 한다.
운동하면서 대흉근과 코어 근육이 발달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약 3개월이 지나면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보상이 기다린다. 익히고 배우면서 향상되는 과정을 볼 수 있어야 즐겁다. ‘스스로’ 배우겠다는 마음과 즐기는 과정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다시 배움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배우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인가. 어릴 때 자전거를 배우듯이 꾸준히 ‘스스로’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워야 한다. 이제는 평생학습이 필요한 시대에 살아가야 한다. 배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배움은 결국은 본인이 ‘스스로’ 배우고 ‘몸’으로 터득해야 한다.
어릴 때 자전거를 스스로 배우고 익힐 때 얼마나 즐거웠던가?
Photo by Serena Repice Lentin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