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습관이 자녀를 거쳐 3대를 이어 간다면?

'밈 -Meme'이라는 문화 유전자 덕분에 다소 과한 욕심을 낸다.

by 엄재균

“당신이 먹는 게 3대를 간다.”

SBS 스페셜 <생명의 선택> 다큐멘터리의 일부이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독일군은 네덜란드를 봉쇄했다. 식량 공급을 6개월간 막아 수 천 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 당시에 임신한 가계를 조사하니 일반 군과 다르게 그 자신과 후손들이 암과 대사증후 질환 발병률이 상당히 높았다. 기근 때 태어난 아이뿐만 아니라 그 손자들까지도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신할 당시에 임산부, 태아 그리고 태아 속에 이미 생성된 난자를 통해 3대를 통해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한 끼 밥이 나와 나의 자식뿐만 아니라 그 후손까지 이어지면서 가족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환경에 의해 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DNA 뿐만 아니다. 유전자가 발현하는 양상 또한 달라진다. 바로 후성유전학이다.


인간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그대로 평생토록 결정되지 않으며, 태어난 후의 다양한 환경과 행동에 의해 유전자의 ‘작동 양상’이 변하면서 후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 다양한 환경과 행동에는 음식과 같은 생활습관도 포함된다.


세계적인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브라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예방 차원에서 유방과 난소절제 수술을 받았다. 브라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다고 꼭 유방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확률이 높기 때문에 수술한 것이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했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유방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지만 그 유전자의 발현이 달라지는 이유를 연구하는 학문이 후성유전학이다. 아직도 “거대한 블랙박스”라고 할 만큼 논란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유방암처럼 유전적 요인이 높은 것도 물론 있지만 가족이 함께 먹고 마시고 숨 쉬는 환경에 따라 암이 발현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고 한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삶의 환경과 생활습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을 만든다.”

프랑스 미식 평론가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 예찬>에서 “무엇을 먹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장담했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그 범위를 더 확장할 수 있다.

당신의 어머니가 먹은 음식을 알면 당신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당신과 가족이 무엇을 지속적으로 하는 가를 보면 당신과 가족의 미래까지 알 수 있다 “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겠다.


가족병력이라는 것도 대부분 식습관과 관련이 있다. 특히 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은 대표적으로 가족의 식습관과 생활양식이 나빠서 생기는 병이다. 식습관이 나쁜 가족이 같은 종류의 짜고 달달한 음식을 계속 먹으면 당연히 비슷한 종류의 병이 생긴다. 이러한 질병은 유전보다는 오히려 가족력이 더 영향을 준다는 의학 통계가 있다.

음식뿐만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도 특히 가족 가운데 생긴 상처가 하나의 패턴이 되어 대물림되고 있다. 세대에 걸쳐 관계 속에서 상처가 켜켜이 쌓이면서 반복되고 있다. 아빠에게 큰 상처를 받은 자식은 상처를 준 그 아빠 역시 그 부모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았을 확률이 크다.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다.


바람직한 대물림도 있다.

독서다.

음식이 당신의 ‘육체적 자아’라면 책은 ‘정신적 자아’이다. 그 ‘정신적 자아’인 독서도 가족력을 통해 습관이 되면서 후손에게 전달된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방’과 같은 비유전적 방식을 통해 문화를 복제하고 전달하는 ‘밈 - Mem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밈’은 생각, 행동, 복식문화 등을 모방함으로써 그 문화를 복제하여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게 문화정보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만 년 전, 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발전시킨 언어, 종교, 예술 등을 포함한 모든 문화는 ‘모방’에 의해 복제되고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전달의 매개는 주로 말과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입으로 전해지는 말과 글을 담은 책은 문화를 복제하고 후손에게 그 문화를 전달하는 중요한 유전자의 역할도 한다는 의미다.


물론 지금도 학계에서는 ‘밈’의 과학적인 증거에 대한 찬성과 반론이 치열하지만 그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1990년대 이탈리아의 신경생리학자인 파르마 대학의 리촐라티 교수는 모방 역할을 하는 “거울 뉴런 - Mirror Neuron"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발견하였다. 어린아이들이 거울 뉴런을 통해 어른의 몸짓 활동 등을 모방하고 공감하면서 언어를 습득하는 출발점이라고 한다. 인간이 ‘모방’을 통해 문화를 이루는 핵심적인 원리를 파악하였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의 행동을 보면서 ‘모방’하면서 같은 음식을 먹고 책을 읽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그 아이들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 시작한 ‘모방’은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그만큼 ‘모방’이라는 문화 유전 전달 매개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가장 중요한 ‘모방’의 전달체인 ‘책’을 읽는 문화에 대한 통계를 가끔 접한다.

우리나라 성인의 40%가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2017년 통계가 전혀 새롭지 않다.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책은 멀리하고 스마트폰 몰입 현상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 스톡홀름 시립도서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의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 사람이 읽은 책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내용을 거의 짐작할 수 있다”라고 한다. 사실 다카시의 책을 보면서 나 역시 ‘박사학위를 받은 바보’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다카시의 독서에 대한 즐거움과 열정이 넘쳤다.


장석주 시인은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라고 했다. 당시 내가 바라본 우주는 너무나 좁고 작아서 지리적으로는 한국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신적으로는 “서양문명의 기원”이라 일컫는 그리스 철학과 노자와 공자의 동양철학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철학적으로도 무지한 상태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정신적으로 깨어있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지적 갈망이 있는 배고픈 인간이 아니라 배부른 돼지와 같았다. 영리한 돼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IMF 외환으로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였다. 퇴직으로 인해 갑자기 백수가 되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그동안 놀지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쁘게 놀았다.


어느 날 아침, 내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당시 유행처럼 번진 주중 등산 대열에는 끼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갖다 놓고 생각했다.

할 일이 없으니 오히려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도대체 왜 살아가는 걸까’

20대 중반에 심각하게 찾아온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이 다시 찾아왔다. 질문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다. ‘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이었다. 보통은 은퇴를 하고 난 다음 찾아온다는 ‘생에 대한 허무한 느낌’도 들었다.


내 생의 두 번째 변곡점에 도달했다.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라는 40을 눈앞에 둔 때였다. 오히려 세상 온갖 일에 유혹이 많았고 갈등도 많았던 시간이었다.


자신이 가장 약할 때 변화를 하려고 몸무림을 치는 모양이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성찰하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한 책을 다시 찾았다. 시간이 많으니 긴 호흡으로 읽었다. 책 속에 길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책과 운동이 다시 나를 살려냈다.

읽는 즐거움을 알고 난 다음에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후로 책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휴일 빼고 거의 매일 수영을 했다. 지금은 걷기를 하지만 그때는 수영으로 시련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높인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아내는 딸들과 함께 책도 읽어주면서 책과 가깝게 지냈다. 어느덧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생각보다 책 읽는 모습을 잘 볼 수가 없다. 왜 그럴까?

큰딸은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전공과 관련된 책은 보고는 있지만 교양서는 그렇게 즐기지는 않는 것 같다. 작은 딸도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독서습관도 나처럼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말하는 앞모습을 배우지 않는다.

부모가 행동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닮아간다. 언젠가는 책 읽는 뒷모습을 딸들이 ‘모방’하는 날이 올 것이라 희망한다.


그래서 그들과 그 자손과 후대를 포함한 모든 이가 인생을 더 풍성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살며시 그려본다. 그렇게 과하게 희망한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 혼자 즐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하다.


논어의 “학이”편이 떠오른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불혹’의 나이에는 깨닫지 못한 것을 이제 ‘듣는 대로 이해한다는 이순’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즐거움의 맛을.


‘읽고 익히며 배우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으면 무슨 의미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즐기는 습관이 후대에 언젠가는 발현될 것이라 믿는다. 후성유전학과 ’밈’ 덕분에 다소 과한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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