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선택의 습관

by 엄재균

산길을 오르면서 호숫가를 걸으면서 느닷없이 떠 오르는 생각들이 많다.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일까?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인생 전체에 대한 진지한 질문도 생각의 우물에서 길러온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일상의 선택에 대한 질문도 함께 떠 오른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특히 직장에서 매일 점심때가 되면 고민에 빠진다.

점심 메뉴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위계질서가 철저한 검찰에서는 점심메뉴는 신참 검사가 담당한다는 소문도 들릴 정도이니 직장인들 역시 사소한 선택에 매일 망설인다. 식당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그 많은 메뉴 중에 다시 골라야 한다. 간혹 어떤 식당은 이런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아예 한 가지 음식밖에 없다. 내가 가끔 가는 동네 식당에도 ‘시골 밥상’ 메뉴 하나밖에 없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간혹 이태리 혹은 프랑스 요리를 하는 정통 식당에 가면 난감할 때가 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메뉴에 나오는 요리 이름이 생소하고 전채, 메인, 후식과 거기에 따른 와인 종류까지 고를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선택에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오늘의 세프' 메뉴가 있다. 물론 요리의 종류를 잘 알고 있고 와인 품종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면 이러한 선택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낯설고 습관이 되지 않으면 불편해한다.


통영에 가면 ‘삼시 세 끼’라는 식당이 있는데 재미있는 메뉴가 있다. ‘아무거나’ 메뉴가 있다. 2인에 50,000원으로 비싼 편인데 제일 잘 나가는 음식이라고 한다. 생선구이, 굴회, 부추전, 멸치무침, 해물뚝배기 등이 포함된 푸짐하게 한 상이 차려져 나온다. 아마 관광지인 동피랑이 가까워 음식 값이 제법 비싸다. 선택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한 메뉴이다.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할 때 누군가 먼저 나서서 주문을 하면 나머지 일행도 같은 음식으로 달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점심 식사 메뉴일 뿐일까? 하루에도 수백 번의 결정을 한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선택의 기회가 늘어나면서 ‘결정 장애’라는 심리적인 장애까지 일으키고 있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심적 갈등을 일으켜 병적인 상태에 이른다. 기술의 발전과 개인주의 발달로 인해 많은 중요한 결정이 개인에게로 넘어왔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힘든 순간에도 선택해야 한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를 사용할지 혹은 연명치료를 할지의 결정을 개인이 해야 한다. 가족들의 고민을 덜어 주가 위해 미리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까지 제출하는 것이 좋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연결된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의 수많은 채널을 선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가? 아마 260개 이상의 채널 가운데 매일 몇 개의 채널만 계속 시청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 시청자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명분 하에 채널을 많이 허가하였지만 시청자에게 오히려 선택의 부담만 주고 있다. 소비자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홍수 속에서 살면서 선택에 대한 축복이 오히려 짐으로 다가온다. 선택은 선물이면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결정권'이다. 중요한 사실은 선택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음식을 고르거나 무슨 옷을 살 것인가 하는 사소한 선택부터 시작하여, 어떤 직업을 구하고 어느 직장을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중차대한 결정도 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사귀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지 결혼에 골인할 지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경력을 쌓은 후에 직장을 옮길 것인지 아니면 죽치고 있을지. 인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중요한 순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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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작은 선택인 점심 메뉴의 선택권을 남에게 넘기는 경우를 자세한 살펴보면 이유가 있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신도 모르는 심리가 있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 작은 선택 과정에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이다.


내가 자율적으로 점심 메뉴를 선택하고 난 후, 그 식사에 문제가 있다면 알게 모르게 일행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 자리에서 직급이 가장 높은 상사 혹은 연장자가 선택을 하면 모두 따라가면 된다. 나중에 음식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나와는 관계없다. 상급자 혹은 상대방에게 불평하면 깔끔하게 끝난다. 자신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남의 의견에 그냥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습관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나의 주도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와 그 결정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좋은 피드백 프로세스를 놓치게 된다.


왜냐하면 다음 선택할 때 신중하게 이전의 선택을 돌아보면서 피드백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좋은 학습 기회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때문에 더 노력할 수 있는 상황을 훈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인 직업의 선택, 결혼, 이직 등의 과정에서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에 친구가 결혼을 위해 선을 보고 난 후에 꼭 나와 아내에게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응? 그것을 자신이 판단해야지 "내가 싫다고 하면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냐"라고 핀잔을 준 기억이 난다.


영국의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는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품을 낳고, 성품은 운명을 낳는다”라고 말했다. 생각의 결정이 곧 선택이다. 따라서 선택의 습관이 계속 쌓이면 인생이 결정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택에는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


선택의 과정에서 자기 결정권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즉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통제하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자기 결정권이 없는 선택은 행동으로 전환하여 습관을 키우기 어렵다. 더구나 자기 결정권이 결여된 삶은 자기 책임은 회피할 수 있지만 결코 행복할 수도 없다. 최근 22주의 조건은 붙었지만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진일보했다. 일상에서도 아침마다 회사에 출근하여, 하기 싫은 업무에 치여 산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곰곰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기 결정권'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많은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의 저자 문요한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뭔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중략) 만일 자율성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점점 스트레스를 받고 무기력해진다. 반대로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삶을 산다고 느낄 때 행복해진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주연이 되고 싶어 하지, 엑스트라로 남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매일 쌓이는 업무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는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업무의 부담도 있지만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나의 꿈이 보름간 휴가를 내어 책을 갖고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책을 실컷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하지 못하고 퇴사했지만.


내 삶을 통제하는 것은 인생의 주인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삶을 통제한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나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행동을 하면서 조금 더 나은 모습의 삶을 이끌어가려는 의지가 아닐까. 자율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시간과 돈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만족되었다고 하여도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돈은 삶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지만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4년 자신의 논문에서 "수입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수입의 증가가 더 이상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발표했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부른다. 다만 여기서 '일정 수준의 돈'은 행복을 추구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런데 '일정 수준의 돈'이란 과연 얼마를 뜻하는 걸까?


노벨경제학 수상자이자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카네먼과 앵거스 디턴 교수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에 걸쳐 미국에서 45만 명을 대상으로 행복과 경제지수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소득이 높아질수록 행복지수는 올라갔으나, 가장 행복을 느끼는 지점은 자신의 연간 수입이 7만 5,000달러에 이르렀을 때라고 한다.


그 이상 돈을 벌면 더 이상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수입이 늘면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의 효과에 익숙해지면서 자신이 쌓은 부를 유지하기 위해 본인의 여가 시간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0퍼센트 공감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위에서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련이 다가온다.


그런 순간에는 항상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 기다린다. 나의 글 <내 생의 첫 번째 변곡점>에서 표현한 대로 시련의 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스스로 생의 방향을 선택하고자 하는 반응과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한 일은 그것을 끝가지 책임을 지고 밀고 나가려는 에너지가 생긴다. 누구로부터의 압력이나 타자의 욕망이 나에게 투사되어 선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잘못되었을 때에도 원망할 대상도 없다.


오로지 나의 책임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거꾸로 얘기하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일단 행동에 옮기면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꾸준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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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려면 가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삶의 기준점을 만들어 주는가? 책 읽기다. 책을 읽으면서 인류의 수많은 현인들이 이미 제시한 길을 뒤따라 걸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째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도구로서 책 읽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장석주는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책은 나 아닌 타자들의 사색과 체험이 가득 차 있는 세계요, 무궁무진한 우주입니다. 따라서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세계, 그 우주로 초대받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책은 우리의 불안과 분노를 가라앉혀 주고, 침체된 기분은 화사하게 만들며, 삶에 대한 의욕을 북돋을 뿐 아니라 지적 통찰력을 갖게 합니다.” 시인의 삶에 밀도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삶을 통제하는 방법에는 다른 요소도 있다.


지적 활동만으로는 삶의 통제권을 잡을 수 없다.


생각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침대에 누워서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잡생각인 경우가 많다. 좋은 생각이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들이 이어진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 오른다. 그뿐만 아니라 뇌기능이 활성화되어 기억력이 증진되고 우울증까지 치료할 수 있다.


다이어트나 운동 습관을 들이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행동이 습관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보상작용이 따라야 한다. <습관의 힘>의 저자인 찰스 두히그가 주장하는 “신호, 반복행동과 보상”의 습관 프로세스의 마지막 고리인 보상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습관은 보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낄 수 없는 보상은 습관화되기 어렵다.


몸으로 움직이는 운동은 달랐다.


내가 '만보 걷기'를 한 다음의 보상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3일을 하고 3주를 지나 3달이 되니 습관이 되었다. 보상이 바로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간의 몸은 의지와 습관에 의해 통제가 가능은 하지만 실제로는 실행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경험을 갖는 것은 의미가 크다. 작은 습관을 들이면서 통제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을 잘 조절하면 정신과 마음도 함께 통제하면서 성숙할 수 있다.


몸을 잘 조절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의 곳곳에서 아프다고 아우성을 친다.

나는 육체적인 통증을 극복하기 위해 걷기를 시작했고 그 고통을 이겨내었다. 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회복했다. 아침에 스트레칭을 꾸준하게 하고 식습관을 조절하고 만보 걷기를 매일 하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그 순간이 즐겁고 또한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육체가 안정되니 마음도 함께 여유가 생기고 평온함을 느낀다.


습관을 들이는 데는 보상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보다 큰 보상이 어디 있는가.


일련의 행동이 습관이 되었다.


이 모든 행동이 이제는 생각 없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습관이 내 몸에 완전히 정착했다는 의미다. 습관을 들이는데 오랜 시간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었다. 새로 익힌 습관으로 인해 앞으로의 삶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에너지가 생겼다. 이 힘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생을 살면서 나의 힘과 노력으로도 컨트롤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스스로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사실을 믿는다.


오늘 점심은 ‘아무거나’ 먹지 말자.

사소한 선택의 과정도 습관이 된다.

운명은 나의 선택을 통해 결정된다.


(Photo by dimas anggar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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