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
"카톡~!"
"새해 복 많이 받았는가? 환갑이네..?"
"아~ 현실이네, 환갑 술이나 한잔 하자. 세월 참..."
지난 1월 초 신년 안부 겸 고등학교 동기로부터 카톡이 왔다.
마침 얼마 전에 앨범 정리를 하다가 디지털로 바꾸어 핸드폰에 담아 둔 고교 시절 사진 몇 장을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아마 고2 때 봄 소풍을 간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뜬 마음에 친구들과 함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막걸리를 한잔 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마침 지나가는 체육 선생을 느닷없이 만나면서 부리나케 도망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렇게 쫓기다 가까이 있는 우리 아파트 옥상으로 모두 피신하면서 놀았던 사진도 있다.
카톡이 다시 왔다.
"아~ 그립다. 지금 눈물 한 방울 찔끔했다"
다시 나를 되돌아본다. 정말 내가 환갑이라니?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사실이니 어쩌랴. 고교 동기회에서는 ‘환갑맞이’ 여행을 준비한다고 떠들썩하다. 환갑여행이라는 단어가 왠지 낯설고 멀리하고 싶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두 번째 서른 살'을 그냥 의미 없이 보낼 수는 없다는 아쉬움에서 출발했다. 우선 나 자신을 한번 돌이켜보면서 정리하고 싶었다. '두 번째 서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글을 쓰는 것은 과거 기억 속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삶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기억을 다시 되살려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내가 글 쓰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인생을 중간 정리하면서 조각난 과거의 경험을 돌이키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경험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도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을 돌아보면서 ‘나를 앞으로 밀고 나가려 했던 에너지는 무엇이었나?’ 나에게 물어본다.
'불안과 공포'이었다. 그 불안은 어디에서 왔을까?
다시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한창 대학 입학을 위해 모두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할 시간이었다. 근데 나는 매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조퇴를 하고 집으로 온다. 원래가 조용한 성격이라 반에서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 몇 명 외에는 사정도 모르고 일찍 가는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엄마가 ‘빽’을 써서 집에서 특별 과외를 받는다고 소문이 났다. 아마 2학년 가을학기 즈음이었나. 기억이 아물거린다.
감기가 오래가고 계속 기침이 났다. 약을 먹어도 낳지를 않았다. 아버지 친구 분이 운영하시는 외과병원에 갔다. 내과를 가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아주 친한 의사라는 이유로 외과를 갔다. 감기를 오래 두면 폐렴이 될 수 있다고 약만 받았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기침이 더 심해지고 마음만 더욱 조급해졌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학교에서는 본격적으로 입시 모드로 들어갔다. 그런데 몸이 피곤하고 심하게 기침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었다. 기운이 빠지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는 사라지고 침대에 그냥 늘어진다.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다가 어느 날 기침에서 피가 섞여 나왔다. 깜짝 놀랐다. 두려운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시내 내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난 후 의사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라고 엄마 보고 힐난조로 묻는다. 순간 무엇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폐결핵 진행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다행히 그즈음에 좋은 약이 나와서 약물치료를 잘하면 완쾌할 수 있다고 겁에 질린 나를 보고 안심을 시킨다. 금방 약 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기침이 심한 순간에는 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떡 들었다. 그리고는 기침으로 기운을 다 빼앗기고 열이 계속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이 내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다. 두려웠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
의사가 안심을 시켰지만 차도가 없자 덜컥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러다 각혈을 심하게 하면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장면처럼 피를 토하면서 죽는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활동성 폐결핵 중증으로 진단받아 학교를 휴학해야 했다. 엄마가 담임선생을 만나 의논한 끝에 일단 한 학기 동안 오전 수업만 하고 조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 역시 이미 대학입시는 포기한 상태였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난다.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 느낀 불안과 비슷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대낮에 장 보러 가서 부재한 엄마의 죽음을 상상했다. '엄마가 죽는다면' 하고 상상하는 순간 그 맑은 하늘이 깜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상상 속의 죽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몸이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느끼는 실존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약은 열심히 먹었지만 빨리 회복될 기미는 없었다. 3학년을 거치면서 매일을 그렇게 의욕도 없이 오전 수업만 하고 학교를 다녔다. 수업시간에는 매번 모의고사를 보았다. 집에서 그나마 개인 과외를 받았지만 체력이 떨어져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시험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최근에 대구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예전의 초중고교 시절에 살았던 옛집을 일부러 찾아갔다. 이사를 네 번 했던 기억이 나는데 가는 곳마다 그 당시의 집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 기억의 장소는 흔적도 사라지고 상가가 들어섰거나 아니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의 과거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기억의 조각들을 모으면서 그 시절을 다시 조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의 기억은 마치 파도에 휩쓸리듯 시간의 물결에 떠밀려 온 것 같았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 제일 늦게까지 남는 게 맞다. 이제 남은 것은 기억의 단편과 몇 장의 사진밖에 없다. 그렇게 죽음의 공포를 겪고 난 후, 삶에 대한 의지가 오히려 더 강력했다.
다시 살아난 후에는 세상을 향한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쫒기 위해 내달렸다. 그게 나의 의지인 줄 알았지만 세상이 심어준 욕망이었다. 그러다가 삶의 방향을 바꾸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제는 삶과 죽음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어슴푸레 느낀다. 죽음이 있음으로써 삶이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죽음은 물리적으로는 ‘다시 아무것도 없음’으로 돌아가지만 그 정신과 영혼은 영속한다고 믿는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한 학자이자 가톨릭 신부인 ‘테야르 드 샤르댕’이 <인간 현상>에서 말한 ‘오메가 포인트’로 향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곳이 무엇으로 명명하든지 상관없다. 이제는 그렇게 공포스러웠던 죽음과 꽤 친해지면서 두렵지 않다. 다만 죽기 전에 많은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호주 출신의 작가이면서 요양원에서 말기 환자들의 간병인으로 활동했던 ‘브로니 웨어’는 12주밖에 남지 않는 시한부 노인을 돌보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다는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5가지”이다.
1.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내가 그렇게 일만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용기를 가졌더라면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즐겁게 지냈더라면
5.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대부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였다. 누구인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가 없지는 않겠지만 결국 삶의 ‘주체성’을 누리지 못한 데서 오는 회한들이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타인의 삶 속에서 길들여진 습관으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죽음은 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하여도 적어도 외로움 속에서 떠나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 19로 인해 가장 슬픈 소식이 들려온다. 중환자 음압병실에서 격리되어 있다가 가족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홀로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다는 뉴스가 가장 가슴 아프다.
그동안 미루어온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를 근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지부에 가서 제출했다. 나는 마지막 순간 가족과 함께 손을 잡으면서 그렇게 떠나고 싶다. 천상병 시인이 쓴 <귀천>에 나온 시구처럼 그렇게 살다가 돌아가고 싶다. 무욕을 얘기한 시인에게 이 또한 나의 과욕인지는 모르겠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Photo by Gary Elli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