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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는 하지만 잘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루틴과 궤도를 찾아서 - 골프 이야기

by 엄재균

지난 주말, 기아 클래식 LPGA 대회에서 박인비 선수가 우승했다.

통산 21승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함께 들었다. 박인비는 다른 프로와 달리 조금 특이한 스윙을 갖고 있다. 박인비의 스윙을 본 많은 아마추어들은 박인비가 아주 쉽게 스윙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려고 덤벼들었다가 모두 나가떨어졌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박인비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체형에 맞는 훈련을 통해 갈고닦은 스윙이다. 아마추어가 흉내를 내다가 오히려 샷이 망가질 수도 있다.


오래전에는 골프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 중에서도 '골프는 부르주아들의 운동'이라고 비난했던 친구가 지금은 골프 사랑에 빠진 경우도 있다. 그만큼 대중화되었다.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은 주말에 스크린 골프를 이용하면서 골프에 입문하는 사례도 많다. 나도 30대 후반에 창투사의 대표를 맡으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골프에 입문하였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독학을 하는 스타일이라 책을 보고 셀프 비디오를 찍으면서 연습했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 달리 상당히 민감한 운동이었다.


“골프는 멘털이 80%, 정신력이 20%”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아마추어는 기본 동작이 중요하다. 처음 애드레스부터 시작하여 백스윙 궤도, 톱에서의 헤드 위치, 다운스윙, 임팩트, 피니시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동작이 없다.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스윙이 이루어져야 한다.


골프는 독학이 어렵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나의 스윙이 제대로 되었는지 결과는 금방 알 수 있다. 공의 구질을 보면 나타난다. 다만 왜 그런 구질이 나오게 된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골프는 훌륭한 코치의 피드백이 중요하다. 타이거 우즈 같은 선수도 스윙 코치를 두는 이유다.


지금은 제대로 공부한 레슨프로가 많지만 9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레슨 프로는 대부분 체계적으로 스윙 이론을 배우지 못했다. 레슨을 하면서 “헤드업 하지 마세요..!”만 노래 부르다가 끝을 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코치도 왜 이 사람이 헤드업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 골퍼들의 스윙을 보면 클럽의 스윙궤도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피니시 동작까지 나무랄 때가 없이 깔끔하다. 특히 박성현과 김효주의 스윙은 예술과 같다. 아직도 잊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2019년 프랑스 에비앙 LPGA 대회에서는 고진영과 함께 서로 우승 경쟁을 위해 1, 2, 3위를 다투었다. 알프스산을 뒷배경으로 하고 옆에는 푸른 레만 호수가 있는 멋진 골프장에서 박성현 프로가 스윙하는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대회 카메라는 그녀의 스윙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하여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었다. 클럽을 들어 올려서 결정적인 임팩트 순간에 헤드를 그렇게 멋있게 던질 수 있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결국은 고진영 프로가 역전 우승하였지만...


나 역시 골프를 시작한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막춤을 추는 스윙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프로처럼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스윙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늘 생각했다. 가로 늦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 배운 나쁜 스윙 습관인 스웨이(몸이 옆으로 쏠리는) 증세를 고치기가 어려웠다.


독학이 독약이 되었던 것이다.


레슨 초반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약 2개월 이상을 힘들게 배우는 도중에 하루는 코치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얘기를 했다. “앞으로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편하게 치시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벌써 예전 스윙이 몸에 붙어 습관이 되어 고치기 어렵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독학으로 배운 잘못된 스윙 습관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나 역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짜증도 나고 좌절을 할 즈음이었다. 그렇게 레슨을 포기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졌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다. 운동 중에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것이 골프였다.


수영이나 당구는 지속적으로 연습하면 잘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골프는 항상 그 진폭이 너무 컸다. 어느 날은 싱글도 칠 수 있겠다는 ‘감’이 오지만 다른 날은 ‘쌩초보’ 같은 느낌도 받는다.


‘내가 뭐 프로로 나갈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냐’고 스스로 위로하였지만 잘 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그냥 ‘명랑 골프’를 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더 잘 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스윙이 안되어 스코어가 아주 나쁜 날에는 ‘내가 왜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 스트레스를 받지? 이즈음에서 그만두자!’라는 결심을 한 적도 있다. 몇 달을 쉬고 난 뒤 산책을 하면서 우연히 푸른 잔디밭을 보면 다시 골프가 생각난다. 중독이다. 그럴 즈음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제대로 한번 다시 시작하자’ 우선 그날의 라운드에서 문제가 되었던 샷에 대한 느낌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18일 공군 골프 모임 – 알프스 대영 CC

“2번 홀 세컨드에서 70미터 앞에서 느닷없이 생크 – 52도 웻지로 몸을 쓰지 않고 팔로만 스윙. 8번 홀에서 티샷이 훅이 난 경우는 왼쪽 어깨가 밀리지 않도록 잡고 하체와 함께 테이크백을 해야 함…등등”


메모를 시작하면서 나의 스윙이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체중이동을 한다고 하면서 자꾸 ‘악성 스웨이’를 하곤 했다. 집중을 하지 않을 때면 자연스럽게 예전의 나쁜 습관이 나온다. 몸의 근육세포가 기억하고 있다. 모든 운동은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초기의 습관을 나중에 고치기 어렵다.


유튜브에는 고수의 레슨프로들이 많다. 그중에 잘 선택해야 한다. 특히 케이블 TV 채널에서의 레슨은 시청률 때문인지 너무 디테일에 맞추어 있다. 아마추어는 기본 원리가 중요한데 그런 설명이 부족하다. 사실 기본만 강조하다 보면 재미가 없어 시청률이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유튜브를 보면서 가장 나에게 맞고 기본 원리를 잘 설명하는 사람을 찾았다.


호주에서 레슨프로로 활동하는 조윤성 프로다.


스윙의 기본 원리와 루틴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단계별로 스윙의 궤도까지 아주 조리 있게 잘 설명한다. 조프로는 특히 루틴을 강조했다. 처음 백스윙 시작 바로 직후의 루틴이다. 약 50센티미터의 구간이다. 그 짧은 루틴이 이미 샷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첫 스타트가 그렇게 중요하다. 바로 연습장으로 달려가 그대로 따라 했다. 뭔가 달랐다. 그 루틴 덕분에 일정한 속도로 안정된 스윙이 저절로 되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필드에서 해보니 조금 과장하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스윙의 루틴을 만들고 궤도만 살짝 바꾸었을 뿐인데 스윙이 아주 편하게 흘러갔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온 결과일 게다.


가끔 언더파를 치는 친구가 자랑삼아 들려준 얘기가 기억난다. “자기는 홀 컵에서부터 거꾸로 공략할 방법을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뭔 소리?’

이제는 그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문득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도 알 듯 말 듯 궤도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골프 스윙처럼 이 궤도인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아닌 때도 있었다. 라틴어이긴 하지만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이라는 두 단어를 기억한다.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면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갈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 궤도를 놓치면 탈선한다. 나 역시 젊을 때는 천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려 무리하게 운전하다가 정상 궤도를 이탈했던 경우도 있었다. 한 때 고통과 불행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궤도를 찾아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낸 사람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생의 종착역에 도달하기 직전에 궤도를 이탈하여 불행하게 삶을 마감하는 사람도 신문지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운동 또한 좋아는 하지만 궤도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어느 순간 즐기는 마음까지 사라진다. 사실 운동뿐만이 아니다. “불광 불급”이라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가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결코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인식의 지평선을 넓힐 수 있다.


머리로 생각만 복잡하게 키우지 말고 몸으로 느끼는 그 순간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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