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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

집착과 권태의 고리를 끊기 위해

by 엄재균

탄천을 걷다 보면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면서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를 시끄럽게 남기고 간다. 내 옆으로 ‘휙~’ 지나간다. 깜짝 놀란다. 어떤 사람은 산길에 마주 오면서 노래를 오히려 더 크게 튼다.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지나치면서 속으로 ‘딱 보니 중늙은이인데 왠지 슬퍼 보인다’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요즘 말로 신중년이다. 최근에는 60~75세를 신중년으로 부를 만큼 육체적으로 젊고 건강해졌지만 생각의 틀은 “꼰대’인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 세대이다. 그래서 더 슬픈지 모르겠다.


의류업계를 비롯하여 자동차와 자전거 제조업, 스마트폰, 건강용품 산업에서는 구매력이 높은 신중년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구매를 부추긴다. <꽃보다 할배>라는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 덕분에 코로나 이전까지는 신중년들을 위한 유럽 여행이 대호황을 누렸다.


기업에서는 효과적으로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진정한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과연 맞는 말일까? 물론 100세 시대를 얘기하는 요즈음 상황에서 아직 30~40년 남은 여생을 고려하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1955~1963년생의 인구는 약 730만 명이 된다. 그 시작점인 1955년생은 이미 작년에 65세로 진입했고 그 마지막 세대인 1963년생도 59세로 거의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나마 젊은 시절에 취득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부동산 사무실을 열어 경제활동을 하지만 정부에서 제공하는 단기 일자리를 찾아 소일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베이비부머는 배낭에 소주 한 병 넣고 청계산과 북한산으로 혹은 골프장을 순례하고 있다. 그렇다고 조용한 산속에서 ‘미스트롯과 뽕짝”을 핸드폰으로 크게 틀면서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은퇴는 나에게도 조만간 현실로 닥쳐온다.


연금제도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일본에서는 NHK를 통해 <노후 파산>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2014년에 방영하였다. 당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인생 말년에 일본 노인들은 몇 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과도한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인생설계를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치매를 비롯하여 중병에 걸리면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진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가”라는 것이 주요 관심사항이다. 바로 우리의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결국은 건강 수명과 경제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생아 기준 기대수명은 남녀 각각 80.3세, 86.3세로 OECD 남녀 평균인 78.1세, 83.3세보다 오히려 더 높다. 하지만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건강수명은 2018년 기준으로 64.4세에 불과하다. 죽기 전에 거의 20년을 병과 싸우다 죽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병원 신세를 지는 기간이 오히려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말년에 오랜 기간에 걸쳐 병원신세를 지면서 경제적으로도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이 함께 파산할 우려가 있다. 노후 파산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코앞에 닥친 냉엄한 현실이다.


‘은퇴 후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나 지인들 대부분은 이미 직장에서 은퇴하였다. 나 역시 현재 진행형 고민 중의 하나이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귀농을 소개한다.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사업을 하던 친구는 사업을 접고 약 5년 전에 고향 거창으로 내려갔다. 부친이 남긴 700미터 고지의 선산을 개간하여 명이나물을 재배하여 매년 집으로 부쳐주었다. 친구는 거창으로 내려가기 전에 아내와 함께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8~10주간의 산나물 재배과정을 듣는 등, 약 2년간 공부하였다. 오래전 위암에 걸려 수술까지 하였지만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완전히 치유가 되었다. ‘나는 산으로 출근한다’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제2의 인생을 거창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친구 얘기를 길게 꺼낸 이유는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다가 은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과일이나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사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작황이 잘 되면 욕심이 생겨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 친구는 한 해 작황을 더 이상 늘리지 않고 본인이 능력껏 재배할 수 있는 양만큼만 한다고 강조했다. 소유에 대한 욕망을 조절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칫 소일거리로 시작하다가 어느 틈에 그 일에 치여서 자신의 건강을 잃어버린 사례가 많다.


또 다른 선배가 있다. 암에 걸려 치료를 위해 공기 좋고 살기 좋다는 속초로 갔다. 농사를 하다가 몸이 치유가 되면서 삶의 여유를 찾는 듯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힘든 농사보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숙박사업을 하는 것이 사업성이 있겠다고 판단하여 팬션을 짓고 영업을 시작하였다. 때마침 불어온 중국 관광 특수로 펜션을 더 키웠다. 결국 무리를 하다가 건강이 다시 악화되었다. 잠깐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원래 목적을 상실하고 소유에 대한 욕망이 생기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무료함으로 인한 권태가 찾아온다.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벤처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의 스톡옵션을 받아서 은퇴한 후배가 있다. 작은 사무실을 내어 채권 매매를 하지만 오전에 한두 시간 일을 보면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종주 후, 전국의 산과 섬을 모두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해외로 여행을 부지런히 나갔다.


처음에는 저렇게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한 번은 섬 여행을 따라갔다. 배에서 내리자 말자 바로 산으로 허급지급 직행하는 후배를 보고 그 순간을 즐기고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는 것마저도 목표 지향적인 삶이었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이리저리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왜 그럴까?


‘권태’가 찾아온 것이다.

남들이 보면 돈도 많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마음은 ‘집착과 권태’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물론 권태에서 탈피하기 위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위에서 말한 친지와 후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집착과 권태’의 늪을 오가면서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불안한 존재다. 그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무엇인가에 집착하기도 하고 또 권태에 빠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그 후배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젊을 때는 경쟁심으로 발버둥 쳤고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가지겠다는 소유욕으로 인해 주위도 살피지 않고 일과 돈 중독에 빠져 중심을 잡지 못했다.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이 더 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통제가 되지 않았다. 때마침 불어온 외환위기로 외환시장이 붕괴되면서 주식시장도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국가가 부도나고, 회사도 부도나고, 나도 함께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결국은 일어섰지만 허탈했다. 몸과 마음이 다 피폐해졌다. ‘집착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놀이동산의 바이킹을 타고 난 느낌이었다. 타고 있을 때는 짜릿한 쾌감이 있지만 내리고 나면 허탈한 그 기분 말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일까?’


세상에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 ‘공짜는 없다’

둘째, ‘비밀이 없다’

셋째, ‘정답도 없다’


하지만 정답은 없지만 나름의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20년간 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나니 서서히 매너리즘에 빠져들 즈음이었다. 어느 순간 ‘권태’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강의와 연구 활동이 심드렁했다. 서예를 배우러 다니고 수채화 등 취미 생활에 빠지려고 했지만 늦게 시작한 탓에 쉽게 빠져 들지 못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 혹은 남이 보기에 그럴듯한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다녔다. ‘세상이 좋다고 떠들어대는 욕망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일’ 말이다.


바로 ‘짧은 산행과 글쓰기’였다.

걸으면서 육체를 건강하게 깨우고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혼탁했던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지 못하면 배기지 못하는 일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흐르는 땀은 세상의 어떤 보약이나 마약보다 효과가 뛰어났다. 심장이 힘차게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르는 산행 중에 노래가 속으로 절로 나온다.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한다.


행복하다고 노래하면 진짜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기한 일이다. 육체와 정신은 따로 놀지 않았다. 육체의 활동이 정신을 지배한다.


나의 건강, 노후준비, 집안 경제상황, 자녀 진로 문제, 아내의 건강, 심지어 국내 정치 상황 등 항상 뭔가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특히 뉴스는 ‘대중의 불안’을 먹고사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늘 불안을 증폭시켰다. 불안은 그 전염력이 대단하다. 어제 한 걱정을 오늘 또 계속해서 똑같이 반복적으로 하는 나의 습관이 보였다.


불안과 권태를 이기는 방법은 몸을 움직이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매일 걸으면서 짧은 산행을 했다.

산행을 하면서 내가 반복적으로 걱정하고 고민하는 ‘집착’으로 부터도 벗어나기 시작했다. 혼자 걸으면서 생각하고 벤치에 앉아 메모를 한다. 매일 나의 감정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살핀다.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상쾌하다. 집착에 빠질 일도 권태로울 시간도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에게 묻는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은 무엇일까?”


40, 50대부터 ‘내가 좋아하는 습관’을 들여야 육십부터 건강을 유지하면서 계속 지속 가능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 습관과 자신의 생각을 고치기가 갈수록 어렵기 때문에 미리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건강하고 경제적인 삶을 위한 인생은 늦어도(!) 오십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건강한 수명과 경제적 안정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오늘이 내 생애에 가장 젊은 나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Photo by Danielle MacInn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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