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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외면하고 싶지만…

반려견이라 부르지만 서슴없이 학대하는 우리들

by 엄재균

초복을 넘기면서 정수리에 꽂히는 태양의 열기가 예사롭지 않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 끝에,

뉴서울골프장 근처에 있는 칼국수로 소문난 <갈마 칼국수> 식당에 갔다. 칼국수가 생각나면 자주 오는 맛집이다. 여름날이라 시원한 ‘콩국수’를 시켰다. 약간 비릿한 맛이 있어 조금 남겼지만 그런대로 잘 먹었다. 저녁 9시에 ZOOM으로 ‘국제표준화’ 회의가 잡혀 있다. 유럽 지역에서 참석하는 사람이 많아 7시간 시차가 있는 그곳 시간에 맞추다 보니 저녁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서류를 미리 검토하면서 회의 준비를 하는 중에 갑자기 속이 불편해진다.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다행히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불편한 속을 참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벽,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에 잠을 일찍 깼다. 근육통과 함께 한기까지 느껴진다. 체온을 재어보니 37.7도였다. 오후가 지나면서 오히려 두통과 근육통이 더 심해지면서 체온도 38도로 올랐다.


‘이건 뭐지.? 혹시 코로나-19는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든다.


무엇보다도 가족에게 옮길 수 있다는 불안에 더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근처 보건소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QR 코드로 스캔하여 개인정보를 입력한 후 바로 검사 키트를 받아 검사 대기선에서 기다렸다가 곧 간단하고 신속하게 검사를 받았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문자로 ‘음성’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다행이다. 혼자서 한시름 놓았다. 사흘간 두통과 신열, 설사로 더 고생하면서 죽과 물만 먹고, 나흘째가 되면서 서서히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식욕이 다시 살아나면서 느낄 수 있었다. 몸이 회복됨을.


아마 그날 점심에 먹은 ‘콩국수’에 섞인 콩물이 이상해서 장염을 일으킨 것 같았다.


같은 시간에 함께 사는 강아지 ‘재롱이’도 아팠다. 설사를 계속하더니 결국에는 피까지 섞인 분비물을 보고 온 가족이 안타까워했다. 큰딸은 재롱이가 바닥에 싼 분비물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닦으면서 제일 걱정을 많이 했다. 큰딸이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한 달 이상 아플 때 재롱이가 늘 옆에서 지켜주었다.


증세가 심해지면 동물병원에 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경과를 관찰했다.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다가 나흘째 되는 날부터 물을 마시면서부터 서서히 회복되는 기운이 보였다.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뒤늦게 물만 먹으면서 버티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생명체의 ‘자기 회복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자연적으로 몸이 회복되는 과정을 비슷하게 경험했다. 생명은 이렇게 면역체계를 갖추어 외부의 병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자기 회복’의 능력을 발휘한다. 같은 시기에 유사한 병을 겪고 나니 동병상련의 마음이 생겼다. 재롱이도 얼마나 아파했을까. 나처럼 아프다고 투덜거릴 수도, 병원에 가자고 재촉할 수도 없는 재롱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냥 꼼짝 않고 누워 있기만 하였다.


함께 아프면서 무엇인지 모르는 동질감을 느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정이입이 되었다. 사실 평소에도 재롱이는 자신의 의사 표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다. 가족이 모두 나갔다가 오후 늦게 들어오면 ‘재롱이’는 반갑다고 짖는다. 마치 ‘왜 이제야 오느냐’고 짜증이 담긴 톤으로 짖는다. ‘하루 종일 혼자서 얼마나 심심했을까’라고 아내가 먼저 재롱이와 대화를 하면서 쓰다듬는다. 그러면 더 어리광을 부리면서 짖어 댄다.


재롱이는 행동으로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늦은 오후가 되면 집에서 ‘재롱이’는 괜히 내 방에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처음에는 왜 그럴까 하고는 지나쳤다. 나중에 관심을 갖고 보니 “지금 산책을 나가자”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 내가 모른 척하고 있으면 본격적으로 내 다리에 마운팅을 하면서 더 난리를 피운다.


보통 하루에 한 번 산책을 나가서 ‘푸푸’까지 해결하고 들어오면 재롱이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어떤 날은 내가 산책을 데리고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다시 나가자고 난리를 피운다.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산책을 갔다 와서는 뒤늦게 이미 나갔다 온 것을 알고는 ‘재롱이 연기에 속았다’고 귀여워한다.


요즘처럼 폭염의 날씨에는 낮에 산책을 나갈 수 없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면 재롱이는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의 눈동자가 계속 나를 추적하고 있다. 가끔 재롱이의 눈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지금은 ‘왜 나가지 않냐고?’는 눈치다. “지금 밖이 너무 더우니 해가 지면 나가자”라고 말을 하면 알아듣는 듯 다시 포기하고 턱을 다리위에 얹고는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언제 갈래.?’ 밀당하고 있다. 눈으로 교감하는 순간이다.


<개미>라는 소설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고양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기 전, 고양이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고양이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양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소설을 쓴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 존재를 이해하려면 그의 시각으로 보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자신의 글쓰기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한다.


베르베르는 개와 고양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눈을 감고 내가 반려동물의 정신 속으로 들어간다는 상상을 하세요. 동물의 눈에 비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천천히 생각하고, 무엇이 불편한지를 알아내려고 애써보라”라고 한다. “내 반려동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원치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고 질문을 하는 순간부터 그 해답이 나온다”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반려동물을 이해하고 영감을 얻어 <개미>, <고양이>, <문명> 등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된다는 의미이다.


바로 시인의 시선에서 꽃과 대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마음이다. 그럴 때 내가 꽃이 되고 호수가 되고 산이 된다. 장자의 “호접지몽”이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비유한 말이다. 시도 그런 지점에서 탄생한다. 나와 대상의 구분이 사라지는 그 초월적인 지점까지 생각이 미치면 대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 100주간 베스트셀러였던 <레이싱 인 더 레인>에서는 강아지 ‘엔조’의 눈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감추고 싶은 인간 세상의 단면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영화로도 소개되었는데 ‘엔조’는 그저 귀여운 애완견으로서 존재를 뛰어넘어 인간보다 더 인간과 교감하는 존재로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는 혹시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견’이란 호칭을 부르면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 뭔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과연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행동하는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니까 별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은 아닐지.


‘중성화 수술’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되새기면서 위선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강아지가 발정기가 되면 사람이 감당하기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생식기를 제거하는 거세 수술을 한다.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재롱이가 6개월 되는 즈음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결국 인간의 시각에서 자신의 편의만을 위한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중성화 수술이 강아지에게도 좋다는 말도 되지 않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진실을 외면한다.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성대 수술 또한 처음에는 수의사들과 견주 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져서 유행처럼 번졌다. 수의사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고 견주는 시끄럽게 짖어 대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이었다. 성대 수술이 얼마나 야만적인 행위인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중성화 수술이 동물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궤변은 오직 인간 중심으로 바로 보기 때문이다.


누가 같은 가족이라고 부르는 자식이 사춘기에 성욕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호르몬제를 먹이지는 않을 것이다. 말로는 애완동물이라는 호칭조차 혐오하고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면서 전혀 반려자로 생각하지 않는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더 혐오스러울 수 있다. 심지어 같은 종인 인간에게도 편견을 갖고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편을 가르고 차별적으로 대한다. 그들이 소수인 경우에는 더 폭력적이 된다. 요즘은 후천적으로 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는 경우가 많다. 멀쩡한 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혹은 질병으로 장애를 입을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장애우’라 불렀다.


‘장애인’이라는 호칭을 ‘장애우’로 바꾸어 부른다고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행동이 바뀔 수 있을까? 그것 또한 자기기만적인 행동이다. 오히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만 가중할 뿐이다. 친구로 대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친구로 불러준다는 위선적 배려가 상대방에게는 더 혐오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냥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장애인’이라고 불러 달라는 이유이다.


사실 예전에는 ‘장애자’로 불리면서 놈 ‘자’가 하대의 느낌이 있다고 하였다. 논란 끝에 1989년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장애인 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놈 ‘자’를 사람 ‘인’으로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집 밖으로 나가면 장애인을 만나기가 어렵다. 결코 장애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서 행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시선 또한 차갑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기라도 타려고 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지체된다. 주위 사람들은 ‘왜 바쁜 시간에 집에 있지 나와서 다른 사람까지 힘들게 만드는가’라는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결국은 사회의 인식이 더 성숙해질 때 자연스레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친구’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굳이 ‘장애우’라는 호칭 자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시혜를 받을 대상도 아닌 단지 장애를 가진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돈 벌러 왔다는 이유만으로, 얼굴 색깔이 더 까무잡잡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더 늙었다는 혹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단지 성적 지향성이 다르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는 지금도 그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눈길을 끄는 뉴스가 있다.

“지하철 승강장 엘리베이터에서 70대 청각장애인을 밀쳐 넘어지게 한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피의자는 “급해서 비키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아 순간적으로 밀쳤다”는 것이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 13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장애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차별을 받는 경우가 아직 허다하다.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는 곳도 많다. 겉으로 보이는 '배려에 대한 무늬'는 그럴싸하지만 내용이 빈약하다.


2017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학부모들은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서진 학교) 신설 주민토론회’ 현장에서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학부모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주민들은 특수학교가 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지역 이미지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이다. 집값이 오르고 떨어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염치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사회의 성숙도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회사에서도 경영자의 인격을 알 수 있는 가장 적확한 방법이 있다. 그가 외부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생사 이탈권을 가진 직원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 동물학대나 영유아 학대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학대를 저지른 사람들이 괴물이어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당한 갑질과 모멸감을 자신보다 더 약한 대상을 만나면 그대로 그 감정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가정폭력, 직장폭력이 피라미드식으로 더 약한 자를 대상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이유이다. 폭력과 차별은 폭탄 돌리기처럼 돌고 돌아서 결국은 사회적 약자가 그 희생양이 된다.


‘평등한 인권’이라고 말로만 부르짖지만 속으로는 온갖 차별을 하면서 위선을 떠는 우리들이 아닌가.


진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우리가 이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그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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