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실패의 기록을 남겨라

나에게 집중하는 힘

by 엄재균

결국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목이 칼칼하면서 머리가 살짝 아프다. 설마? 생각하고 산책을 나갔다.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난 후에도 계속 목이 답답하고 이물감이 느껴진다. ‘혹시?’ 하고는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하니 선명하게 두 줄이 나타났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토요일 오후라 동네 병원은 문을 다 닫아 차를 타고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전화로 확진 판정을 듣고 약 처방까지 받았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라 순간 짜증도 났지만 이왕 돌아킬 수 없으니 편안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불청객도 손님이니 잘 대해서 보내야지. 아직 증세가 심하지 않아 그냥 누워있기는 답답하다.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다. “내 삶에 실패의 기록을 남겼는가?”라는 주제로 시작할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목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다 사라진다. 신기하다. ‘뭘 쓸까?’ 이것도 좋은 경험이니 실패의 경험에 대해 써보자.


문득 떠 오른 말이 있다.

"잘 노는 친구가 일도 잘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과연 그럴까?


여기서 잘 논다는 의미는 ‘잡기 놀이’에 능한 사람을 말할 수도 있다. 바둑, 카드놀이, 화투 등의 도박성 놀이를 의미한다. 이런 놀이는 승부심과 사행심이 생겨 결국은 인격이 타락하고 가산을 탕진하는 위험이 있다. 아니면 여유 시간을 알차고 효율적으로 보낸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겠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친구가 일도 잘한다.”라고 바꾸었으면 한다. 운동 즉 스포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너무 많다. 특히 단체로 하는 운동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축구, 야구와 농구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축구공 하나 던져줄 때가 가장 즐거웠다. 물론 이론수업도 있었지만 재미가 없었고 지금은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축구하는 시간만큼은 즐거웠다. 몸이 서로 부딪치면서 역할 분담과 함께 나름 권력 서열도 만들어진다. 게임의 규칙을 만들면서 서로 협상하고 의사소통하는 방법도 배웠다. 승리와 패배의 순간을 맞보기도 한다. 이겼을 때는 상대방의 등을 치면서 격려하고 졌을 때는 안타깝지만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더 분발하려는 힘도 키웠다.


이런 즐거움도 내 기억으로는 고교 1학년으로 끝이 났다. 입시 모드로 들어가면서 모든 운동경기는 중단되었다. 더 열심히 운동장을 뛰면서 스트레스를 풀 기회를 차단해버렸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어떨까?


지금도 체육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놀이가 아니라 수행평가를 치러야 할 시험으로 전락하였다. 즐겁게 뛰어놀 수 없고 평가로 인해 스트레스만 가중된다고 한다. 단체 경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수많은 학습기회를 놓치고 있다. 내가 체육시간과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스포츠는 개인이 평생을 통해 습관화하면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유학시절에는 테니스와 수영을 즐기면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학부에 개설된 수영시간에 청강생으로 들어가서 배웠다. 수영으로 체력을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테니스를 통해서는 파트너와 호흡이 중요하고 수영은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근력과 함께 인내심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스포츠였다. 지금은 주로 수영, 등산, 산책, 골프와 당구를 즐긴다. 운동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수영은 한번 기술을 터득하면 중간에 관두고 다시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등산과 산책은 주위사항만 알면 되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골프만큼은 다르다. 지금도 골프와는 밀당을 하고 있다.

싱글을 기록하는 친구도 시즌이 다시 오면 간혹 헤맬 때가 많다. 아주 예민한 운동이다. 누군가 박세리한테 물었다. “왜 골프는 이렇게 힘드냐고. 가만히 있는 공을 치는 것이 움직이는 공을 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냐고?” 박세리는 “죽어 있는 공을 살려내어야 하니까 더 힘들죠”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설명했다. 하여간 민감하고 쉽지 않은 운동인 것은 확실하다.


나 역시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이 없다. 잘 맞을 때는 모든 것을 터득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방심하면 여지없이 무너지곤 했다. 왜 그럴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어차피 놀이인데 그냥 ‘명랑 골프’를 치면서 즐기면 되지 하고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실력이 늘지도 않을 테니 그냥 ‘명랑 골프’로 즐기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이왕에 놀이를 하는데 배우면서 역량을 키우면 더 즐겁지 않을까? 다시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모든 운동이 동일하지만 눈으로 보고 이론으로 아무리 무장해도 몸으로 연습하지 않으면서 결코 잘할 수 없다. 그래서 약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그날의 라운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8번 홀 파 4에서 세컨드 샷 8번 아이언을 훅이 나서 오비가 되어 페널티를 받았다. ‘왜 그랬을까?’를 메모에 적었다. “심리적으로 투온을 생각하면서 상체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 상체가 먼저 내려오면서 스윙궤도를 잡지 못하고 당겨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적는다. 당시의 샷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어 그 이미지를 다시 상상하려고 노력한다. 왜 스윙궤도를 잡지 못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찾아서 실패의 기록을 적었다. 잘 맞았을 때의 느낌도 함께 기록했다. 바둑에서 복기하는 이유와 같다.


수십 번의 라운드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몸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자만하면 여지없이 예전의 나쁜 습관이 그대로 나온다. 그러면 게임이 망가진다. 실패의 기록을 적으면서 아주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묻는다.

“나이 들어 뭘 그렇게 배우려고 하니? 그냥 편하게 살지~”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더 이상 배우기 싫어”라고 한다. 그러면 난 그냥 웃고 만다.

나는 실패의 기록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돌이켜보면 내 삶 자체가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더욱 그러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은 삶이 있을까? 병마에 시달리면서 학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회사가 IMF 외환위기로 인해 부도가 나서 실직도 당했다. 물론 성취의 시간도 가끔 있었지만 실패의 순간도 많았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성공에는 아주 조금 배울 수 있지만 실패에서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공감한다.


그때도 실패를 기록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글로 썼다. 글은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냥 머리로 생각할 때와는 다르게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운동을 하면서 쓴 실패의 기록과 삶을 통해 쓴 실패의 기록은 나에게 다시 도전할 힘을 준다. 물론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에 좌절도 한다. 그렇지만 다시 그 실패를 기록하고 조금 더 노력하면서 성장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따지고 보면 인생도 하나의 스포츠 게임과 비슷하다. 게임의 규칙이 있고 개인 역량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과 함께 협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제시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도 중요하다. 게임 도중에 반칙하는 친구, 아니 내가 반칙하려는 욕심이 꿈틀거릴 때도 있다. 게임 후 돌이켜 보면서 그 쓸데없는 욕망도 기록한다. 실패의 원인도 함께 기록한다.


삶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겪는다. 실패을 했을 때 나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 실패와 고난을 지나치지 말고 기록해서 배움의 즐거움을 죽을 때까지 누리고 싶다. 성격은 타고 나지만 성품은 운동 경기를 통해 학습이 가능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욕심이 과했나?


삶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