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글은 퇴고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
‘내가 과연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계속 쓸 수는 있을까?’
'금방 포기하지는 않을까?'
4년 전,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떠오른 막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글쓰기를 결심했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앞이 망망했다. 학창 시절에 문학청년도 아니었고 공학도에, 블로그에 몇 줄 쓰다가 그만둔 지도 오래전이었다. 글을 쓰려고 한 목적은 육십을 바라보면서 내 삶을 글로써 정리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딸들에게 아빠가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말로 얘기하면 자칫 잔소리가 되기 때문에 글로 전하고 싶었다.
포기해버릴까?
아냐, 그만두더라도 일단 시작은 해보자. 그다음 떠오른 질문이,
어떻게 글을 시작하나?
그래, 일단 기억의 순서로 써보자.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기억이 떠 오르는 대로 써 내려갔자. 마침 대학에서 안식년을 받아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다. 아침에 산책을 하고 난 후 맑은 정신에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지만 한번 기억의 실마리를 잡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니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외부에 약속도 하지 않고 하루 내 글만 써 내려갔다.
매일 같은 루틴으로 한 달을 꼬박 쓰니 얼추 기억의 샘물을 많이 파낸 듯했다. 분량도 제법 되었다. A4 용지에 인쇄하니 142쪽이 나왔다. 12 폰트 크기이지만 한 권의 책이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다 썼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 독자가 될 아내에게 한번 보라고 인쇄한 원고를 넘겨주었다. 며칠 후, 아내가 다 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딸들에게 메시지 전달이 잘 되지 않을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나의 실망한 얼굴을 봤는지, “그동안 끝내느라 수고가 많았어요”라는 위로의 말이 뒤에 따라왔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라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어떡하지?, 고민이 밀려왔다.
그때 아내 왈,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글을 올리는 플랫폼이 있으니 그곳에서 천천히 글을 올리는 것이 어때요?”라고 제안했다. 그곳에서 독자들의 객관적인 반응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글 쓰는 습관을 들이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카카오사에서 개발한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를 찾았다.
<브런치>에 들어가니 남의 글을 볼 수는 있지만 글을 쓰려면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집필 계획과 그동안 쓴 글 중에 3~4개를 골라 <브런치> 작가 신청 코너에 올렸다. 기존의 글 중에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떨어졌어요”라는 글이 자꾸 보였다.
여기에도 떨어지는구나?
그럼 나도?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며칠 후,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시름 놓았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브런치에 담길 소중한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는 단어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벌써 작가라도 된 기분일까? 2년 전,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리면서 시작한 글 쓰는 시간을 돌아본다.
누가 강요해서 한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 ‘삶을 글로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속에서 일어난 욕망과 갈증으로 시작했다. 사실 처음 글을 쓸 때는 시중에 출간하지 않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만 주기 위해 적당량만 인쇄할 생각이었다. 브런치에서 내가 쓴 글이 독자들에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식으로 출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올린 글 중에 선별하여 출판사에 출판 기획안을 제안했다. 대충 다음과 같이 정중하게 거절을 당했다.
보내 주신 귀중한 원고 잘 검토하였습니다.
죄송하게도 저희 출판사의 기획 방향과 달라
함께 출간을 준비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활동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어떤 출판사는 저자가 일정 분량의 책을 부담하는 조건인 자비 출판이 가능하다는 회신도 받았다.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출판사는 대표가 직접 전화해 기대를 했지만 자신의 출판 경력만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고민 중에 우연히 부크크 출판사의 주문형 출판 방식을 알게 되어 나에게 맞는 것이라 생각되어 살펴보았다. 출판사로서는 재고부담이 없다는 장점과 저자는 경제적 부담 없이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다. 다만 주문을 받은 후, 인쇄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책을 받는데 4일에서 1주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우선 지난 2년간 브런치를 통해 발행한 글들을 제목에 맞게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브런치 북>으로 만들었던 “25년 다닌 헬스클럽을 탈퇴한 후”라는 제목의 글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걷기와 쓰기 그 즐거움에 대해”라는 <브런치 매거진>의 일부 글도 포함시키면서 책의 주제와 목차가 흐름에 맞게 재배치하였다. 책의 주제와 목차를 정하고 나니 초고의 글들이 조화가 되는 것 같았다.
책의 구조와 흐름을 맞추고 난 다음, 책 표지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주문형 출판 방식은 글의 원고에서 디자인까지 저자가 책임지는 구조이다. 물론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디자인 서비스가 있지만 모든 것을 저자가 선택하고 결정한다. 저자가 교정과 교열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저작권과 함께 표지와 내지 디자인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일단 평소에 생각해 둔 표지 디자인 속에 저작권을 가진 그림이 있어 출판사에 확인하니 그것도 저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 권의 전공 서적을 내면서 이런 종류의 일들은 모두 출판사가 알아서 진행했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표지에 넣고자 하는 초현실주의 화가인 벨기에 태생의 르네 마그리트 그림의 저작권을 찾기 위해 구글로 찾으니 벨기에 <르네 마그리트 재단>이 저작권을 갖고 있었다. 저작권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재단에 이메일을 보내고 재단에서 소개해 준 한국에 있는 에이전트를 통해 돈을 지불하고 저작권과 함께 그림의 원본 파일도 받았다. 출판사의 도움 없이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제 남은 일은 퇴고하는 작업이었다.
그동안 4년간 혼자서 ‘끙끙’ 거리며 아주 가끔은 희열도 느끼면서 쓴 글을 출간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퇴고는 글을 다시 읽고 생각하여 다듬어 고치는 작업이다. 약 보름이면 끝날 줄 알았다. 헤밍웨이가 주장한 “모든 초고는 걸레다”라는 사실을 우습게 지나쳐 버렸다. 초고를 모니터로 보면서 교정과 교열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아마 수십 번은 보았을 것 같은 초고를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46 배판의 크기로 된 320쪽이 넘는 원고를 파트별로 인쇄하여 한번 쭉 읽어보았다. 신기하게도 종이에 인쇄된 활자는 눈으로 보기도 좋았고 읽으면서 문맥이 끊어지는 불협화음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브런치에는 글을 쓰고 퇴고할 때 그 글 하나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책으로 완성하기 위한 퇴고는 글 전체의 맥락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삶에 대한 글을 다시 보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라는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때는 힘이 많이 들었구나’라고 나를 다독거리면서 위로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퇴고하는 시간은 삶을 퇴고하는 것과 같았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했고, 실수하면서 잘못했는지, 어떤 모양을 갖고 살았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에세이를 쓰는 일은 처음이라 쓴 글을 다시 여러 번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떤 글은 ‘내가 이런 글을’이라는 감탄도 있지만 또 다른 글은 ‘무슨 글이 이래?’라고 실망하기도 했다. 먼저 오타와 비문을 확인하는 과정은 마치 어린 시절 소풍 가서 보물 찾기를 하면서 쪽지를 찾았을 때의 기뻤던 순간이 떠올랐다. 오타와 비문은 쉽게 눈에 띄어 고칠 수 있지만 글의 제목과 맥락이 맞지 않을 때는 다시 글을 써야 할 정도로 엉터리가 많았다. 글의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거나 논리의 비약이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렸다. 혼자서 퇴고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이 쓴 글을 타인의 시선에서 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교정과 교열 서비스 비용을 확인하니 1매당 1,500원에서 2,000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고 있을 때 딸의 개업으로 바쁘게 활동하던 아내로부터 도와주겠다는 ‘복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아내는 예전에 교회 신문을 발행하는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일반 교인들의 원고의 교정과 교열 작업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목사님이 쓴 책도 편집해 본 베테랑이었다. 등잔불 밑이 항상 어두운 법, 해법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내에게 파트별로 인쇄한 원고 뭉치를 주고 난 후, 마치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치른 후, 시험지를 제출한 느낌이었다. 채점자는 평생을 함께 한 아내가 아닌가? 설마 ‘퇴짜는 맞겠어?’라는 심정으로 그 결과를 기다렸다.
드디어 채점 결과가 나왔다. “전체적으로 앞에서 한 얘기를 뒤에서 또 하는 중복이 많고...’, 지적 사항이 줄줄이 나온다.
퇴짜를 맞았다. 수정을 요구한 것들 중에 특히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단락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는 곳은 다시 고쳐야 했다. 내가 읽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제삼자가 매의 눈으로 보면 드러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거의 5개월간 초고와 수정본을 주고받으면서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치고 고쳐도 계속 고칠게 나와서 어느 순간 내 글을 보면서 현기증이 생길 정도다. 일단 마감일을 정하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다'는 말을 위안 삼아 마감했다.
다음 단계는 책의 표지 디자인을 만드는 작업이다. 출판사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먼저 디자인 아이디어를 대충 그려서 포함해야 할 그림 파일까지 디자이너에게 보냈다. 몇 번의 주고받는 작업을 통해 책 표지의 배경 색상이 마음에 흔쾌히 들지 않았지만 최종 결정했다. 책의 내지는 <내지 디자인>에 있는 샘플을 선택하여 최종 원고를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마치 내 삶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뭔지 모를 아쉬움도 함께 남았다.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퇴고를 거치면서 글 쓰는 실력도 늘고 독자로서 글을 보는 안목까지 키울 수 있었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쓰고 싶은 욕심도 퇴고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났다. 초고를 쓰기만 하면 어떻게든 퇴고를 거쳐 책을 완성할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퇴고는 필요 없거나 진부한 글을 덜어내는 작업이다. 삶에도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과 삶은 퇴고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았다. 내 삶에도 퇴고를 통해 덜어낸 글처럼 군더더기들이 없는지 돌아본다.
그것이 무엇일까?
글 쓰는 단계에서 최고로 즐거운 순간이 퇴고의 시간이다. 이게 끝이 나면 책으로 나온다는 기대가 있으니까 더 즐거운 것이 아닐까?
끝이 좋으면 그동안의 모든 잘못이 용서가 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