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쓰는 남자
월급날이면 통장에 따박따박 급여가 꽂히던 좋은 직장을 영원히 다닐 수 없기에 직장생활을 접고 자유인이 된 지 10년이 넘었다.
신혼 초부터 아내는 둘 중 한 사람만 골치 아프면 되지 않겠냐고 전체적인 자산관리는 나에게 맡기고 아내는 일정액의 생활비만 타서 쓰는 경제구조로 살아왔다.
그러나 퇴직 후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전체적인 수입도 줄고 그마저 들쭉날쭉하였는데 소비형태는 퇴직 전과 다르지 않아 그때부터 가계 부도사태를 걱정하며 '가계부'를 써 보기로 했다.
다행히 종이로 된 가계부를 쓰는 게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맞게 앱으로 된 가계부를 쓰게 되었는데 신통방통 수입지출이 자동으로 입력되고 기간별 통계와 지출 분석까지 해주는 기능이 있어 유용했다.
과거 직장 생활할 때는 가계부도 안 쓰고도 흑자로 살아가며 노후 준비도 조금씩 했지만 퇴직 1년 후 가계부를 정산해 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 정도 적자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수입에 비해 지출이 너무 많아 세부 항목을 보니 크게 낭비한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씀씀이를 줄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가계부 덕분에 지출에 대한 분석도 하게 되었고 여행 가서도 가성비 좋은 식당만 찾아다니고 꼭 필요한 지출 외에는 자제하는 등 나름 알뜰하게 살아가는 요령도 터득하게 되었다.
요즘 경기도 안 좋고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한번 오른 물가는 내려오지 않아 MZ세대들 사이에서는 무지출, 무소비 챌린지가 유행하는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 미국우선주의정책을 추진할 것은 분명하고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이란 경제전망에 우울하다.
가뜩이나 고환율로 원화가치는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어 기업은 물론 서민, 자영업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경기침체 속에서 너무 소비를 줄이다 보면 또 다른 경제위기가 다가올 수 있으므로 우리 서민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소비 습관을 유지하면서도 현명하게 소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재방송이 없는데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집에서만 지낼 수 없는 일.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고, 가성비 좋은 맛집도 탐방하고, 알뜰하게 여행도 다녀야 한다.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기에 더욱 돈을 잘 쓰기 위해 오늘도 가계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