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쓰는 유언장
새해 첫날이 되면 누구나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나는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일 년 전 써 놓은 유언장을 읽어보고 현재의 마음을 담아 새로 고쳐 쓰는 일이다.
재벌집 막내아들도 아니고 유언장을 고쳐 쓴다면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미래는 신의 영역이라 어느 누구도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다.
인생은 오직 한번 뿐이고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에 죽음에 대해서 두렵지는 않다.
점쟁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93세까지 살다 중풍 5일 만에 세상을 뜨게 될지 아니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이 어느 날 갑자기 올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한마디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생각만 해도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래서 혹시 모를 미래의 일을 대비하여 몇 년 전부터 나의 인생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다.
법적인 형식을 떠나 편지를 쓰듯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와 토끼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다이어리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다 보면 1분 1초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유언장을 쓰고 나면 숙제를 다 한 것처럼 마음이 평화롭고 편안할 뿐 아니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새롭게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에 감사하며 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작은 것에 아웅다웅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다시 한번 유언장을 꺼내 읽으면서 마음을 바로잡기도 하는데 이렇게 유언장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이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인생. 좀 더 의미 있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오롯이 내 마음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