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보름살이 (13)

네비도 실수할 때가 있다

by 촌개구리

오늘 박 회장님이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96세 어머님과 점심 약속이 있다고 해서 9시에 출발해 우리가 여행 다녀온 곳 중 인상 깊었던 매미성을 함께 둘러보고 올라가기로 했다.


매미성 주차장에 도착하니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을 보니 거제 9경에 선정될 정도로 관광명소가 된 것은 확실하다.


매미성을 한 바퀴 돌고 인증사진도 찍고 인근 찻집에서 수제 쌍화차 한잔씩 하며 2박 3일의 짧은 거제 여행을 복기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어서 우리는 거제 북부권에 있는 구영등성과 농소리고분을 가보려고 네비를 찍고 가는데 2km 남은 지점에서 거가대교 쪽으로 진입하라고 해서 긴가민가 하면서 톨게이트를 진입했는데 목적지가 점점 뒤에서 멀어져 갔다.


아~ 네비도 실수할 때가 있구나 이미 통행료 8천 원은 결제되었고 가덕도에서 회차해야 하므로 이왕 엎어진 거 가덕도 투어를 해 보기로 했다. 1989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편입된 가덕도는 신공항건설 문제로 익숙한 섬이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가 볼만한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대항항에 있는 인공동굴을 가보라고 해서 항구 주변에 주차시키고 데크길로 안내하는 대로 인공동굴에 도착했는데 동굴입구에 거대한 대포 조형물 때문에 깜짝 놀랐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일제 강점기 태평양 전쟁당시 조선인 탄광 노동자들이 강제징용되어 변변한 장비 하나 없이 곡괭이, 삽을 들고 맨손으로 팠다고 하는데 그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다음 코스는 '외양포 포진지'로 1904년 러일전쟁 발발하자 일제는 외양포를 군사 거점으로 삼기 위해 주민들을 쫓아내고 포진지 공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무려 41년간 일본군이 군사요새를 구축하고 주둔했던 곳이다.


잘 살고 있는 마을주민을 쫓아내 병영을 구축한 것은 물론 진지 구축에 조선인 징용자들이 강제 동원됐다니 또 한 번 가슴이 아팠다.


포진지에는 엄폐 막사와 탄약이나 포탄을 보관하던 창고인 탄약고, 대포를 올려놓는 장치인 포좌가 남아있었고 포진지를 나서 외양포 마을로 내려가자 일본식 가옥이나 우물터, 마을 공동 목욕탕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덕도에서 짧은 외도를 마치고 거제도로 돌아와 장문포 왜성을 찾았다. 장문포 왜성에 도착하니 성은 허물어져 일부만 흔적이 남아있어 우리가 방문했던 다른 성과 비교 되었다.


표지판을 읽어보니 장문포 왜성은 선조 27년(1527) 왜군이 장목만을 수비하기 위해 건너편 송진포왜성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아놓은 성이다.


선조 25년 한산도 대첩에서 조선 수군에 패해 남해안을 조선 수군이 장악하자 공격을 피하고 주둔지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가덕도 포진지와 마찬가지로 남의 나라에 들어와 무슨 일을 한 건지 어이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강력한 국방력이 없으면 이런 꼴을 당한다는 생각을 했다

유호전망대에 잠시 들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보다 멋진 거가대교를 감상하고 지난주 맛있게 먹었던 식당을 다시 찾아 아구불고기로 맛있게 먹고 오후 일정으로 '장목진객사'를 방문했다.

장목진 객사는 조선시대 거제부 소속 7개 진영 중의 하나였던 장목포진의 관아건물이다. 한려해상의 입구에 자리 잡아 진해만 일대를 방어하고 대한해협을 바라보기 위한 전략의 요충지였던 이곳은 장수들이 모여 전략을 의논하는 장소로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과 이영남 장군이 전략을 모의했다고 하니 규모는 작지만 객사가 다시 보였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집 토끼들이 추천한 지세포에 있는 인생김밥인 톳 김밥을 드디어 사서 저녁으로 먹었는데 기대이상으로 맛있다. 대박!

이렇게 선택의 갈림길에서 길을 잘 못 들었다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곳에서 즐기면 된다. 인생도 여행도 자신이 의도하거나 계획했던 방향과 달라질 수 있고 미리 알 수 없어 더욱 흥미진진하다. 덕분에 오늘 역사공부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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