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개구리의 삶 (58)

걷기 예찬

by 촌개구리

사람이 직립보행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 인생 기준으로 요즘처럼 걷기 좋은 시대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국 어디를 가나 개천가는 전부 걷기 좋은 길로 만들어졌고 최근엔 유행처럼 퍼져가는 맨발 걷기 운동에 발맞춰 지역마다 맨발로 걷기 좋은 황톳길을 조성하고 있는데 우리 동네에도 얼마 전 단지 안에 생겼다.


사람이란 동물이 원시 때부터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며 살아온 유전자가 남아있는지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도 나는 완전무장하고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걷기를 즐겼다.


우리 동네는 숲세권으로 산과 저수지를 끼고 있어 다양한 코스로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다. 봄에는 바람이 불지만 날마다 초록색깔로 변하는 나뭇잎과 시차를 두고 피어오르는 봄꽃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유치원생이 단체로 봄소풍이라도 나온 날은 재잘대는 병아리들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숲길로 들어서면 '홀딱 벗고'라고 우는 새도 만나고 딱따구리도 만난다. 나무에서 뿜어대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다 보면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좋다. 한여름에는 저녁이나 밤에 가로등 불빛을 벗 삼아 걷고 밤하늘의 별과 달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대화를 나누며 걷는다.


가을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걷기 가장 좋은 계절이지만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한 길을 걷다 보면 가을이란 인생처럼 참 짧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하며 걷는다.


겨울도 걷는데 나쁘진 않지만 한겨울 시베리아에서 찬 바람이 불어오는 날은 장갑을 껴도 손이 시려 힘들다. 눈 내리는 날은 어릴 적 눈싸움하며 뛰어다니던 추억이 있지만 요즘은 눈이 내려 그늘진 빙판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낭패이므로 조심조심하며 걷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은 잔디밭 길이다. 그래서 골프장에선 가능하면 카트에서 내려 걷는다. 특히 동반자와 대화를 나누며 파란 잔디밭인 페어웨이를 걷는 시간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육상트랙처럼 생긴 우레탄길로 약간 쿠션도 있고 충격이 흡수되어 좋아한다.


나는 운동효과를 높이기 위해 빨리 걷다 보니 주로 혼자 걷는다. 혼자 걸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요즘 배우기 시작한 디카시 시상도 잘 떠올라 시인이 된 기분이라 좋다. 아내와 함께 걸을 때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뒤에서 팔자로 걷는 내 걸음걸이를 교정해 주므로 가끔 함께 걷는다.


우리 동네는 반려동물을 키우기 매우 좋은 환경이라 걷다 보면 만나는 것은 사람 반 견 반이다. 그리고 먹이를 주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길냥이도 자주 만나는데 가끔 잘생긴 친구는 동영상과 사진도 찍어준다.


가끔 반려견이 노쇄한지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유모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눈만 좌우로 돌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풍을 맞았는지 한 손에 지팡이에 의지해 쩔뚝쩔뚝 힘겹게 걷는 사람을 만나면 남일 같지 않다.


앞으로 내 힘으로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내 마음대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행복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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