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이에게 심겨져 있던 보복에 대한 공포감...
우리 첫 째 아들은 한국 아이들 기준으로는 키가 큰 편이다. 만 4세가 갓 넘었는데 키가 110cm 정도 되니 작은 키는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이 있는 네덜란드 기준으로는 딱 평균이다. 나와 아내도 키가 183, 173으로 한국에서는 키가 큰 편인데 이 곳에서는 딱 평균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작년 12월부터 만 4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어려워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이내 학교 가는것을 즐거워 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흘러 우리 아이를 때리는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먼저는 한 학년 위에 있는 두 명의 아이들이 우리 첫 째 아이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 째 아이는 아주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의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2학년 학급 담임교사에게 찾아가 상황을 물었다. 2학년 교사는 우리 아이를 때린 아이가 2명인것을 발견했고 이 아이들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이 아이들은 사과를 했다. 이제 문제는 해결되었다.
최근에 같은 반에 있는 한 아이가 문제의 행동을 시작했다. 리코더를 부는 우리 아이의 리코더를 손으로 쳐 입속에 리코더가 부딪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한 차례 교사에게 2학년 문제와 관련 항의를 해 둔 터라 이번에는 일회적인 것일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오늘 아들로부터 그 같은 아이가 삽을 들고 아이 눈을 몇 번이나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피하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적잖게 된다. 나야 네덜란드에 살며 부당한 상황에서 부딪혀본 경험들이 있어 교사를 찾아가고 상대 부모에게 이야기를 하는 등 대응을 하는데는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계속 내가 나서서 대응을 하는 것은 아이가 앞으로 닥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학교 폭력과 관련해서는 나도 쓰린 기억이 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약 2년 가까이 한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심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아이와 맞붙어 폭력을 종식시켜 본 적이 있다. 학폭 이슈가 돌 때, 나는 그나마 괜찮았다.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고 내가 그 사건을 스스로 끝냈으니 말이다.
군대에서도 악명 높은 고참을 상대로 한 바탕 한적이 있다. 그는 나를 1년간 괴롭혔다. 나는 그와 한 바탕 갈등을 선택했다. 다른 고참들이 다 나갔을 때, 나는 그에게 들이 박았고 그는 남은 6개월 가량 나를 피해다닌 적도 있다. 그는 전역을 할 때 울면서 내게 사과를 했다. 내가 종식시킨 괴로움의 기억은 내게 나름대로의 회복을 주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오랫동안 봉사자로, 또 고용된 사람으로 일을 했다. 내가 단체를 떠난 이후 대표의 성비위 문제와 재정적 비리 문제를 발견하고 아끼는 동생들의 탈퇴를 도운 적이 있다. 이로 인해 1년 가량 말못할 고초를 겪었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문제가 한 기독교 언론에 의해 보도되어 그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각종 뉴스에 보도되어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무용담과 같이 자신이 힘이 세어 다른 친구들을 쥐어 박고 다닌 이야기를 종종 내게 해주시곤 했다. 예컨데 바둑알 뚜껑을 잡고 한 바탕 누군가와 일전을 벌였다는 무용담과 같은 이야기 등이다. 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못했다. 괴롭히면 혼자 속을 썩이고, 정면으로 그 괴로움과 맞설줄을 모르는 아이였다.
우리 첫째 아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들에게 이제 세 번째이니 그 아이가 때리려고 하면 물러서지 말고 맞서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는 내게 말했다. 자신이 그 힘이 세보이는 아이를 때리면 그 아이가 나를 더 괴롭힐 것 같다고. 나는 4살박이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것에 놀랐다. 내가 그간 누군가로부터 오랫동안 괴로움을 겪었던 정확히 똑같은 멘탈리티가 그 아이에게 있었다.
아이는 내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네덜란드 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었다. 첫째라 그런지 한 번도 내색 않고 네덜란드 말을 본인이 잘 한다고 항상 큰소리를 쳤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불편감을 감지하고 있었다.
어릴적 폭력의 경험은 아이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내가 두 번이나 만난 네덜란드로 입양된 한인 부부의 한 아들은 청소년기에 심한 폭력을 당하고 아직 그 상처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헤매이고 있다. 웃는 얼굴로 상황을 피해보고자 했던 그 아이의 선의는 아무 힘이 없었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고자 한다.
다행인 것은 내가 EBS 글로벌 리포터 시절 취재했던 한기무예(합기도의 한 분파) 관장님과 친분이 있고, 이 관장님은 이런 문제를 잘 다루신다는 점이다. 아이가 폭력에 취약한 이유는 아이 내부에 있는 자신감과 성장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아이가 6살이 되어야 그 곳에 갈 수 있기 때문에 6살이 될 때 까지는 나름대로의 대비를 해야 한다.